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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묵객경【子墨客卿】자묵 객경(子墨客卿)은 먹[墨]을 의인(擬人)화한 것인데, 양웅(楊雄)의 우렵부(羽獵賦)에서 나왔다. 자문자답【自問自答】제가 묻고 제가 대답함. 자문지【咨文紙】자문은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외교문서인데, 그때 쓰이던 종이이다. 자미【子美】당(唐) 나라 두보(杜甫)의 자이다. 자미【紫微】자미원은 별자리 이름인데 제왕의 궁전 또는 당대(唐代) 중서성(中書省)의 별칭으로 쓰인다. 자미가경【蔗味佳境】진(晋)나라 고개지(顧愷之)가, “감자(甘蔗)를 먹을 때에 꼬리에서부터 먹기를 시작하면서 점점 아름다운 경지[佳境]로 들어간다.” 하였다. 감자는 사탕수수로, 여기서는 아름다운 취미를 말한다. 자미객【紫薇客】중서성(中書省)의 관원(官員)을 말하는데, 서성의 당대(唐代) 아칭(雅稱)이 자미성(紫薇省)이다. 성 안에 자미를 많이 심었었다 한다. 자미궁【紫微宮】삼원궁(三垣宮)의 하나로 천제(天帝)가 거처한다는, 북두성(北斗星) 북쪽에 있는 성좌(星座)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천자의 대궐을 이른다. 자미랑【紫微郞】관명인 중서사인(中書舍人)을 말한다. 자미랑【紫微郞】이는 원래 당(唐) 나라 때의 벼슬로 임금의 제고(制誥) 등을 맡았으므로 고려의 지제고(知制誥)를 지칭한 것이다. 자미선관【子美善寬】두자미는 너그럽게 자위(自慰)했음. 자미성【紫薇省】당 나라 때에 중서성(中書省)이라 했으며, 성(省) 안에 자미화가 있었다. 천자의 정령(政令)을 돕는 비서관서(秘書官署)였다. 자미원【紫微垣】임금이 있는 곳을 말한다. 자궁원(紫宮垣)이라고도 한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북극(北極)의 다섯 별과 구진(句陳)의 여섯 별이 모두 자궁(紫宮) 속에 있다.” 했고, “자궁원 열 다섯 별 중에서 서번(西蕃)이 일곱이고 동번(東蕃)이 여덟인데, 북두(北斗)의 북쪽에 있으며 그 첫째가 자미이니 대제(大帝)의 자리로서, 천자(天子)가 거처하는 곳이다.” 하였다. 자미칠가【子美七歌】두보(杜甫)의 건원중우거동곡현작가칠수시(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詩)를 가리킨다. 《杜小陵集 卷八》 자미호【紫微壺】당 나라 시인 두목지(杜牧之)를 두자미(杜紫微)라 하는데, 그의 시에 술병을 가지고 논다[携壺]는 말이 있다. 자미화【紫薇花】자미화는 곧 백일홍(百日紅)의 이칭이다. 당나라 때 중서성(中書省)을 자미성(紫微省)이라 하고, 그 안에 자미화(紫微花) 두 그루가 백락천(白樂天)이 심은 것이라 한다. 자미화하객【紫微花下客】자미는 곧 임금이 있는 대궐을 이르는 말로, 즉 조정에 있는 벼슬아치들을 비유한 말이다. 자방【咨訪】시경(詩經)에 “두루 자방한다[周爰諮訪].”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사신(使臣)이 길에서 모든 것을 묻고 알아서 임금에게 보고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자방【子房】자방은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명신 장량(張良)의 자이다. 장량은 한고조를 도와 진 나라와 초 나라를 멸망시켰는데 그 공로로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그 뒤에 장량이 말하기를, “일개 서민이 극도로 부귀를 누렸으니 적송자(赤松子)를 따라가 노닐겠다.” 하고 세상과 관계를 끊음으로써 한신(韓信)을 위시하여 당시 함께 공을 세운 수많은 공신들이 역적으로 몰려 끝내 사형을 당했던 경우와는 달리 공명을 보전하였다. 《史記 卷 55 留侯世家》 자방료채【子房了債】장량(張良)은 원래 전국 시대 한(韓) 나라의 벼슬하던 가문인데, 조국을 멸망시킨 복수를 위해 창해 역사(滄海力士)를 시켜 진시황(秦始皇)이 탄 수레를 공격한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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