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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長夜】영원히 깜깜한 땅속 무덤을 뜻한다. 장야유천이운주【長夜幽泉已隕珠】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뜻함. 구슬은 사랑하는 아내를 이른 것으로, 부현(傅玄)의 단가행(短歌行)에 “전에는 그대가 나를 손에 쥔 구슬처럼 사랑하더니 무슨 뜻으로 하루아침에 나를 도랑에 버리는가[昔君視我 如掌中珠 何意一朝 棄我溝渠]”하였다. 장야지음【長夜之飮】날이 새어도 창을 가리고 불을 켜논 채 계속하는 주연(酒宴)을 말한다. 장양【長楊】궁전(宮殿)의 이름, 본래 진(秦) 나라의 옛 궁전인데, 한(漢) 나라에서 수리하여 행행(行幸)할 때 사용하는 장소로 삼았다. 장양궁【長楊宮】장양궁은 본래 진(秦) 나라의 옛 궁궐이었는데, 한(漢) 나라가 중수(重修)하여 사용하였으며, 한 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이 궁에서 수렵을 많이 하였다. 한 나라 때 양웅(揚雄)은 일찍이 왕을 호종(扈從)하여 이 장양궁의 사웅관(射熊館)에 가서 장양부(長楊賦)를 지어 임금을 풍간(諷諫)한 일이 있다. 장양부【長楊賦】성제(成帝)가 원연(元延) 2년 가을 백성들을 동원시켜 남산(南山)ㆍ포(褒)ㆍ사(斜)등 계곡과 홍농(弘農)ㆍ한중(漢中) 지방까지 돌아다니며 그물로 짐승을 사냥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사로잡은 곰ㆍ멧돼지ㆍ표범ㆍ여우ㆍ사슴 등 각종 짐승을 행궁(行宮)인 장양궁의 석웅관(射熊館)에 운반하여 그것들을 울타리 안에 몰아넣고 호인(胡人)으로 하여금 맨손으로 때려잡도록 한 뒤에 그 광경을 구경하며 즐겼다. 양웅(揚雄)이 성제를 따라 석웅관에 왔다가 돌아가서 묵객경(墨客卿)과 한림주인(翰林主人)이란 가공인물을 등장시켜 문답체로 만들어진 글로, 천자를 풍간한 것이다. 《漢書 卷八十七下 揚雄傳》 장양헌부옹【長楊獻賦翁】한나라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장양부(長楊賦)라는 부를 지었다. 장어민【藏於民】인정(仁政)을 하는 임금은 재물을 국고(國庫)에 저장하여 두는 것보다 백성이 잘 사는 그것이 곧 나라의 재물을 백성에게 저장하여 둠이 된다는 것이다. 장열【張說】당 현종(唐玄宗) 때의 문장가이며 정치가.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고 연국공(燕國公)이 봉해졌음. 당시 허국공(許國公) 소정(蘇頲)과 연허대수필(燕許大手筆)이라 칭해졌으며, 조정의 큰 편찬 사업이 거의 그의 손에서 이루어졌음. 저서에는 장열공집(張說公集)이 있음. 《新ㆍ舊唐書 張說傳》 장영【長纓】적을 사로잡아 묶는 긴 밧줄을 말한다. 한(漢) 나라 때 남월왕(南越王)을 입조(入朝)하게 하기 위해 남월로 사신을 보낼 적에 종군(終軍)이 자청하기를 “바라건대 긴 끈을 주옵소서. 제가 반드시 남월왕을 묶어 궐하에 끌어오겠습니다.” 하였다. 《漢書 卷六十四 終軍傳》 장영불사공하대【莊靈不死公何代】제 경공이 우산(牛山)에서 놀다가 제 나라를 바라보며 “아름답도다 이 나라여, 울창한 태산(泰山)은 예부터 죽음이 없는데 나만 죽어서 여기를 떠나겠구나.” 하자, 곁에 있던 안자(晏子)가 비웃으며 “장공(莊公)ㆍ영공(靈公)이 죽지 않았다면 임금께서 어떻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불인(不仁)입니다.” 하였다. 장영사계노추두【長纓思繫老酋頭】한(漢) 나라 간의대부(諫議大夫) 종군(終軍)이 남월(南越)에 사신으로 가겠다고 자청하면서 “긴 밧줄 하나만 주시면 남월왕을 꽁꽁 묶어 대궐 아래에 바치겠다.[願受長纓 必羈南越王而致之闕下]”고 장담한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 終軍傳》 장영지【長纓志】장영은 긴 노끈이라는 뜻으로, 한(漢) 나라 때 종군(終軍)이 왕에게 자청하기를 “원컨대 저에게 긴 노끈을 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제가 남월왕(南越王)의 목을 묶어서 대궐 아래 바치겠습니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즉 자원하여 입대(入隊)하는 데 비유한 말이다. 《漢書 卷六十四 終軍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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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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