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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停年】인재를 가리지 않고 다만 관직에 있는 햇수와 공적(功績)에 따라 그 자격을 인정하여 승진 등용하는 제도를 이르는데, 이 제도는 맨 처음 위(魏) 나라 최량(崔亮)에게서 시작되었다 한다. 《魏書 崔亮傳》 정년격【停年格】정년격은 후위(後魏) 때 이부 상서(吏部尙書) 최량이 처음 건의하여 만든 제도로서, 즉 인재의 현우(賢愚)를 따지지 않고 재직(在職) 연한에 따라 자격을 인정하여 승진 등용(昇進登用)하던 제도이다. 정뇌경【鄭雷卿】조선조 인조(仁祖) 때의 문신(文臣). 자는 진백(震伯)이며 호는 운계(雲溪). 소현세자(昭顯世子)가 볼모로 심양(瀋陽)에 잡혀 갈 때 수행하였으며 청 나라에 귀화한 정명수(鄭命壽)ㆍ김돌(金突)이 우리나라에서 보내는 세폐(歲幣)를 가로채므로 그 죄상을 고하고 처벌할 것을 주장하다가 마침내 청 나라에서 잡혀 죽었다. 정능【靖陵】중종(中宗)의 능. 정릉은 처음에 원당(元堂)에 있는 희릉(禧陵)에다가 합장(合葬)하였다가, 명종 17년(1562)에 광주(廣州)의 선릉(宣陵) 곁으로 천릉(遷陵)하였다. 정단매용라【正旦賣慵懶】옛날 정월 초하룻날에 게으픔을 판다는 풍속이 있었다. 정당【政堂】지방 관아. 정대【鞓帶】무늬를 수놓은 붉은 가죽띠. 정대경【鄭大卿】대경은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의 자이다. 정덕기【鄭德基】덕기는 정유성(鄭維城)의 자(字)이다. 정덕여【鄭德餘】덕여는 정백창(鄭百昌)의 자(字)이다. 정도호가【丁都護歌】악부(樂府)의 노래 이름. 송 고조(宋高祖)의 딸의 남편 서규(徐逵)가 노궤(魯軌)에게 피살되자 고조가 도호인 정우(丁旴)에게 장사지내 주도록 하였는데, 서규의 처가 울부짖으며 찾아와 장례에 관한 일을 물어 볼 때마다 정도호를 애달프게 불렀던 고사로서 그 소리가 애절하였으므로 후대의 사람들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함.《昌谷集註》 정동【征東】고려 신종 5년 12월에 경주(慶州)에서 적도 패좌(孛佐) 등이 난을 일으키자 김척후(金陟侯)ㆍ최광의(崔匡義)ㆍ강순(康純) 등 세 대장군을 나눠 보내어 토벌하게 하였다. 《高麗史 世家 卷二十一》 정동명【鄭東溟】동명은 조선조(朝鮮朝)인 현종(顯宗) 때의 문신(文臣)이며 학자였던 정두경(鄭斗卿)의 호이다. 정동성【征東省】중국 원(元) 나라가 우리나라 개경(開京)에 두었던 관아. 원 세조(元世祖)가 일본(日本)을 정벌할 때에는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이라 하였고, 그 뒤에는 정동행성(征東行省)이라 하여 원 나라 관리를 내주(來駐)시키고 고려의 내정(內政)을 감시하였음. 정두【飣餖】정두는 안주나 과일을 포개 놓은 것. 한유(韓愈)의 남산시(南山詩)에 “或如臨食案肴核紛飣餖" 라 하였다. 정락【井絡】정락(井絡)은 일반적으로 장안(長安)에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촉(蜀)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람【精藍】정사 가람(精舍伽藍)의 준말로 불교의 사원(寺院)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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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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