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정려【鼎呂】구정(九鼎)과 대려(大呂), 구정은 우(禹) 임금이 구주(九州)의 쇠를 거두어 주조한 9개의 솥이고, 대려는 주(周) 나라 종묘(宗廟)에 설치한 종(鍾)인데, 모두가 천하의 보기(寶器)로 일컬어진 것이다. 정려【精廬】정사(精舍), 즉 사원(寺院)을 말한다. 정력【定力】정력(定力)은 선(禪)을 굳게 지키어 속된 생각에 흔들리지 않는 힘. 정령사공융【精靈似孔融】이른 나이에 문채(文彩)를 발하는 재사(才士)라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공융(孔融)이 10세 되던 해에 이응(李膺)을 찾아가 기발한 문답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100》 정령욕화갈파운【精靈欲化葛陂雲】대나무 그림을 묘사한 것이다. 후한(後漢) 비장방(費長房)이 호공(壺公)에게서 신선술을 배운 뒤 죽장(竹杖)을 타고 집으로 날아와 갈파(葛陂) 호수 속에 죽장을 던지니, 그 정령이 청룡(靑龍)으로 화하여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神仙傳 壺公》 정령위【丁令威】한(漢) 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으로 영허산(靈虛山)에서 도술을 배워 학(鶴)이 되어 천년 만에 요동으로 돌아왔다 함. 수신후기(搜神後記)에, “丁令威 本遼東人 學道于靈虛山 後化鶴歸遼 集城門華表柱 時有少年 擧弓欲射之 鶴乃飛 徘徊空中而言曰 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冡纍纍 遂高上沖天”이라고 보임. 정령위【丁令威】한(漢)의 요동 사람으로 신선술(神仙術)을 배워 학이 되었다 한다. 정록【鋌鹿】사슴이 죽음에 임박하면 아늑한 곳을 가릴 겨를이 없어 험난한 곳을 허겁지겁 달려간다는 데서 온 말이다. 《左傳 文公 十七》 정룡투【鄭龍鬪】춘추 시대 정(鄭) 나라에 큰 홍수가 졌는데 용들이 나와 시문(時門)의 밖 유수(洧水)의 못에서 서로 싸웠다 한다. 《春秋左傳 昭公 十九年》 정림【亭林】정림은 청 나라 초기의 고증학자인 고염무(顧炎武)의 호이다. 정림일민【亭林逸民】정림은 고염무(顧炎武)의 호. 자는 영인(寧人). 일민은 덕행과 학문이 있으면서 세상에 나오지 않고 파묻혀 사는 사람을 말하는데 고염무가 명(明)이 망하자 절의를 지켜 청 나라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한 말이다. 정립신인【鼎立神人】제주도(濟州島)에는 맨처음 양을나(良乙那)ㆍ고을나(高乙那)ㆍ부을나(夫乙那)라는 세 사람이 있어 그 땅에 나누어 살면서 그 사는 곳을 도(都)라고 이름하였는데, 신라(新羅) 때에 고을나의 후손 고후(高厚)가 그 두 아우와 함께 바다를 건너서 신라에 조회하니, 왕이 기뻐하여 고후에게는 성주(星主)란 호칭을 주고, 그 둘째 아우는 왕자(王子)라 하고, 끝 아우는 도내(都內)라 하고, 나라 이름을 탐라(耽羅)라 했다고 한다. 정마【征馬】먼 길을 가는 말. 정명【淨名】불가의 용어이다. 또는 경(經)의 이름임. 정명【貞明】주역(周易) 계사하(繫辭下)의 “일월의 도는 바르고 밝은 것이다.”에서 나온 것으로, 임금의 거룩한 덕을 뜻한다. 정묘【丁卯】만당(晩唐) 때의 시인 허혼(許渾)을 지칭한 말. 그가 단양(丹陽)의 정묘교(丁卯橋) 곁 정묘장(丁卯莊)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며, 그의 시집을 정묘집(丁卯集)이라 한다. 정묘교【丁卯橋】정묘교는 다리 이름으로, 당(唐) 나라 때 시인 허혼(許渾)이 이 다리 곁에 별장을 짓고 살았었으므로, 전하여 여기서는 시인 묵객이 사는 곳을 비유한 것이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200/1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