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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정완【訂頑】장횡거(張橫渠)가 지은 서명(西銘)의 본명.

정완유【鄭緩儒】장자(莊子) 열어구(列御寇)에 “정(鄭) 나라 사람 완(緩)이 구씨(裘氏) 땅에서 열심히 학문을 닦더니 3년 뒤에 유자(儒者)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요【政要】정관정요(貞觀政要)의 약칭으로 당 나라 오긍(吳兢)이 저술한 것인데, 당시의 법제 정령(政令)과 사적을 기록하였다.

정우곡【鄭愚谷】우곡은 정이오(鄭以吾)의 호.

정운【鄭運】정운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큰 공을 세우다가 부산포(釜山浦) 해전(海戰)에서 선봉으로 싸우던 중 전사하였다.

정운【停雲】친구를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진(晉) 나라 도연명(陶淵明)의 정운시(停雲詩)에 “정운은 뭉게뭉게 떠오르고 시우는 자욱이 내리도다[停雲藹藹 時雨濛濛]”하였고 그 서(序)’에 “정운(停雲)은 친우를 생각해서 지은 시이다.”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詩) 몽이백(夢李白)에 “落月滿屋梁 猶疑照顔色”이라 하였다.

정운【停雲】친한 벗을 생각한 시(詩)를 일컫는다. 도연명(陶淵明)의 시 가운데 친우(親友)를 생각하며 지은 정운시(停雲詩) 4수가 있는데 그 시에 “머물러 있는 뭉게구름 때맞춘 보슬비 먼 곳 친구 생각하며 서성댄다.[藹藹停雲 濠濠時雨 良明悠邈 搔首延佇]”하였고, 자서(自序)에 “정운은 친구를 생각하는 시이다.”라고 한 것에서 나온 것으로, 정겨운 벗을 그리워할 때 인용된다.

정운시【停雲詩】도연명(陶淵明)의 정운시(停雲詩)에 “靄靄停雲 濛濛時雨”라는 구절이 있는데, 자서(自序)에서 “이는 친우(親友)를 생각하며 지은 것이다.” 하였다.

정원【貞元】당(唐) 덕종(德宗) 연호.

정원군【定遠君】인조(仁祖)의 아버지. 선조(宣祖) 13년에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7년 뒤 정원군에 봉해졌으며, 임진왜란 때 대가(大駕)를 호종(扈從)했던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올랐고, 광해군 11년에 죽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뒤에 대원군(大院君)에 추존되었다가, 인조 5년에 조정 신하들의 많은 논란 끝에 원종(元宗)으로 추숭(追崇)되었다. 《仁祖實錄ㆍ璿源系譜》

정원류불식【貞元流不息】천도(天道)가 유행함을 말함. 원형이정(元亨利貞)에서 정은 겨울에 해당 하고 원은 봄에 해당함. 《周易 乾卦》

정원수조【正元受祖】정원은 정월 초하루를 말하고, 수조(受祖)는 임금 자리를 종묘(宗廟)에서 선위받는다는 뜻으로, 정월 초하룻날에 요(堯) 임금이 그만둔 천자(天子)의 자리를 순(舜) 임금이 종묘에서 선위받았던 일을 이른 말이다. 《書經 舜典》

정원투필【定遠投筆】정원은 한 나라 반초(班超)의 봉호(封號)이다. 반초가 집이 가난하여 관청에서 글씨를 쓰면서 먹고살았는데, 어느 날 글씨를 쓰다가 붓을 내던지면서 “대장부가 별다른 지략이 없더라도 부개자(傅介子)나 장건(張騫)이 이역 땅에서 공을 세운 것을 본받아 봉후(封侯)가 되어야지, 어찌 이 따위 짓을 일삼으랴.” 하였다. 《後漢書 卷47 班超傳》

정원후【定遠侯】정원후는 바로 후한 때의 명장 반초(班超)의 봉호인데, 반초는 일찍이 서역(西域)에 정벌을 나가 장군장사(將軍長史)ㆍ서역도호(西域都護) 등의 관직에 30여 년 동안 재직하면서 서역의 50여 나라들을 위무 안집(慰撫安集)하여 모두 한 나라에 귀순하도록 하였다. 그는 평화를 항상 주장하였다. 《後漢書 卷四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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