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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악어문【祭鰐魚文】한퇴지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있을 때에 악어(鰐魚)가 해를 끼치므로 제악어문(祭鰐魚文)을 지었다. 제안【齊安】송나라 때에 황강은 제안군(齊安郡)이었다 제야【除夜】제야는 섣달 그믐날 밤을 말한다. 제양【齊揚】나란히 들다 제양【濟陽】한 광무제(漢光武帝)가 태어난 제양궁(濟陽宮)이 있는 제수(濟水)남쪽에 있는 고을. 제양주【齊梁主】제 선왕(齊宣王)과 양 혜왕(梁惠王)을 가리킨 것으로 이들은 모두 맹자를 초청하였으나 쓰지 못하였다. 제어달【祭魚獺】매년 맹춘(孟春)에는 수달[獺]이 잉어를 잡아 진설해 놓고 제 조상에게 제사지낸다는 말이다. 제어충비【制於蟲臂】‘버마재비[螳蜋]가 두 발을 버티어 수레바퀴를 항거한다’ 하는 속담이 있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수레바퀴가 버마재비에게 제어를 받았다는 말이다. 제여거【齊餘莒】전국 시대 연(燕)의 장수 악의(樂毅)가 제(齊)를 공격하여 제 나라 성(城) 70여 개가 모두 함락되었을 때 오직 즉묵(卽墨)과 거(莒) 두 성만이 남아 있었음. 《史記 燕世家》 제염【虀鹽】제염은 나물과 소금으로, 소식(素食)을 하는 청빈한 삶을 말한다. 제염새폐장【虀鹽塞肺腸】부추에다 소금으로 마른 창자 채우다. 천빈(淸貧)한 선비의 생활을 말함. 한유(韓愈)의 송궁문(送窮文)에 “태학 생활 4년 동안 아침에는 부추에다 저녁에는 소금으로 때웠다.[太學四年朝虀暮鹽]" 하였음. 제영【緹縈】한(漢) 나라 때 태창령(太倉令) 순우의(淳于意)의 딸 이름. 순우의는 아들은 없고 딸만 다섯이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고소를 당해 감옥에 갇혀 형을 당하게 되자 아들 없다는 것으로 딸들에게 욕했다. 이에 제영(緹縈)이 슬피 울며 아버지를 따라 장안에 가서 자신을 관비로 삼아 부친의 죄를 사해 달라고 임금에게 상서(上書)하여 아버지의 형을 면하게 했던 효녀였다. 제오【題午】옛날 이안의(李安義)라는 사람이 부자(富者)인 정생(鄭生)을 찾아뵙고 나오면서 그 정생의 문 위에다 크게 오(午) 자를 쓴 데서 온 말인데, 그것은 곧 ‘소가 머리를 내놓지 않는다.[牛不出頭]’는 뜻으로서 정생의 오만함을 풍자한 것이었다. 제오교【第五橋】장안 남쪽 위곡(韋曲) 부근의 명승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제오교 동쪽 물에 한을 흘려보내고, 황자파 북쪽 정자 시름이 서렸어라.[第五橋東流恨水 皇陂岸北結愁亭]”이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6 題鄭十八著作丈故居》 제오낙월【啼烏落月】당 나라 장계(張繼)의 풍교야박시(楓橋夜泊詩)에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眼" 이라 하였음. 제우취【齊竽吹】자격도 없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관직 생활에 뛰어들었다는 말이다. 제 선왕(齊宣王)이 모집한 피리의 명인 3백 인 가운데 남곽 처사(南郭處士)가 몰래 끼어 들었다가, 아들 민왕(湣王) 때에 하나하나 독주(獨奏)를 시키자 도망쳤던 고사가 있다.《韓非子 內儲說上》 ☞ 남우(濫竽) 제운【齊雲】오대(五代) 한보(韓浦) 가 지은 누각.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에 있다. 구름과 같이 높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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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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