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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晢晢】별이 반짝이는 모양 제제【折折】편안한 모양 제제【嚌嚌】근심하여 슬퍼하는 소리 제제【悌悌】손윗사람을 잘 섬김 제제【嗁嗁】우는 모양 제제【提提】우아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모양, 편안하여 만족해하는 모양, 명백한 모양 제제【媞媞】편안한 모양, 아리따운 모양 제제【泜泜】가지런한 모양 제조삼년불긍명【齊鳥三年不肯鳴】제 위왕(齊威王)이 임금이 된 지 3년에 음란한 놀이만 하고 정치는 돌보지 아니하였다. 순우곤(淳于髡)이 왕에게 은어(隱語)를 하기를, “큰 새가 한 마리 있는데 3년 동안이나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왕이 답하기를, “3년 동안 날지 않다가 날면 장차 하늘을 찌를 것이며, 3년 동안 울지 않다가 울면 장차 사람을 놀래게 할 것이다.” 하고 그날부터 정치에 힘을 써서 강국(强國)이 되었다. 제주【題柱】제주는 기둥에 글을 쓴다는 뜻인데 한(漢)나라 사마상여가 처음에 벼슬하기 위해 서쪽의 장안(長安)으로 들어갈 때 승선교(昇仙橋)를 지나가다가 다리 기둥에 “네 필의 말이 끄는 높은 수레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으리라.[不乘高車駟馬 不過此橋]" 라고 쓴 일을 말한다. 곧 반드시 고관 대작이 되어 금의환향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것이다. 《漢書 卷五十七 司馬相如傳》 제주【齊州】중주(中州) 즉 중국(中國)을 말함. 제주【齊州】지금의 산둥성(山東省)에 있음 제주【題柱】출세하기 위해 고향을 버림. 고향이 성도(成都)인 한(漢)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벼슬하기 이전에 서쪽으로 가면서 승선교(昇仙橋)를 지날 때 그 다리 기둥에다 쓰기를, “고거사마(高車駟馬)를 타지 않고서는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으리라.[不乘高車駟馬 不過此橋]" 하였음. 《成都記》 제주객【題柱客】벼슬길에 나아가 공명과 현달을 구하기로 맹서한 선비를 말한다. 한(漢) 나라 때 성도(成都)의 북쪽에 승선교(升仙橋)란 다리가 있었는데,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처음 장안(長安)에 들어가서 공명을 구하던 때 이 다리를 지나면서 다리 기둥에 제하기를, “말 네 마리가 끄는 높은 수레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다시 건너오지 않겠다.” 하였다. 《太平御覽 卷73》 제주구점연【齊州九點煙】제주(齊州)는 중주(中州) 즉 중국으로, 중국의 구주(九州)도 높은 곳에서 바라다 보면 아홉 개의 운무 덩어리[九點煙]로 보인다는 말인데, 당(唐) 나라 이하(李賀)의 시 ‘몽천(夢天)’의 “遙望齊州九點煙”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주미응과장절【題柱未應誇壯節】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촉(蜀)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향할 때, 성도(成都)의 승선교(昇仙橋) 다리 기둥에 “네 마리 말이 끄는 붉은 수레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건너오지 않겠다.”고 써서 공명(功名)에 대한 포부를 밝혔던 고사가 있다. 《藝文類聚 卷63》 제주절【題柱節】기필코 성공하겠다는 뜻. 한(漢) 나라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고향인 성도(成都)를 지나다가 승선교(昇仙橋) 다리 기둥에 “높은 수레와 사마를 타지 못하면 다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不乘高車駟馬 不過此橋]" 고 쓴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제주지【題柱志】제주(題柱)는 다리의 기둥에 글씨를 쓰는 것. 전한(前漢)의 문호(文豪)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처음으로 장안(長安)을 갈 적에 촉군(蜀郡)의 승선교(昇仙橋)를 지나면서, 교주(橋柱)에 제(題)하기를 “높은 수레와 사마를 타지 않고는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 하였다. 제주현【帝珠玄】도(道)의 본체.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에서 놀면서 곤륜산(崑崙山) 언덕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다가 금방 돌아오면서 검은 진주를 잃어버렸는데……”하였음. 《莊子 天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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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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