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조참【篠驂】죽마(竹馬)와 같은 뜻으로, 아이들이 장난할 때 말처럼 두 다리로 걸터타고 다니는 대막대기를 말한다. 조참【朝參】매달 네 차례씩 문무 백관이 검은 조복(朝服)을 입고 정전(正殿)에 나가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고 정사를 아뢰는 것을 말한다. 조참【曹參】한(漢)의 조참이 소하(蕭何)를 대신해 승상이 되어 밤낮 술만 마시고 일을 돌보지 않았다. 경대부(卿大夫) 및 빈객(賓客)이 이를 말하려고 찾아가면 조참이 순주(醇酒)를 먹여 취하게 하므로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곤 하였다. 《史記 曹相國世家》 조창【趙昌】송(宋) 나라 때의 화가(畫家)로 특히 화과(花果)를 잘 그렸다. 조처사【趙處士】조연귀(趙衍龜)를 가리킨다. 조천관【朝天館】제주도 세 고을을 경유하여 육지로 나가는 자는 모두 여기에서 바람을 기다리고, 전라도를 경유하여 세 고을로 들어오는 자도 모두 이 곳과 애월포(涯月浦)에 배를 댄다고 한다. 조천기린석【朝天麒麟石】기린굴(麒麟窟)의 조천석을 말함. 평양 부벽루(浮碧樓) 아래에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동명왕(東明王)이 기린마를 타고 이 굴로 들어가 땅속으로부터 조천석으로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는데 그 말굽자국이 지금도 돌 위에 있음. 조천대【朝天臺】부벽루 아래 있는 기린굴(麒麟窟) 남쪽에 있는데, 세상에서 전하되 동명왕이 기린말을 타고 이 굴에 들어갔다가 땅속에서 조천석이 되어 솟아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하며, 그 말발굽 자국이 돌 위에 있다고 한다. 《輿覽》 조천부미약【朝天鳧未躍】서울로 오는 수령이 출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후한(後漢) 현종(顯宗) 때 하동(河東) 사람 왕교(王喬)가 섭현(葉縣)의 영(令)이 되었는데, 매달 삭망(朔望)에 대궐에 나와 조회에 참석하였다. 황제가 그가 자주 오는데도 수레가 보이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태사(太史)로 하여금 몰래 엿보게 하였다. 그러자 태사가 그가 올 때에는 두 마리의 오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온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오리가 오는 것을 보고 그물을 펴서 잡으니, 단지 신발 한 짝만 있었다. 《後漢書 卷82 方術列傳 王喬》 조천촉【照天燭】옛날 밝은 관원을 조천촉(照天燭)이라 칭도한 고사가 있다. 조철【助徹】조세법의 일종인 조법(助法)과 철법(徹法). 조청【朝請】제후(諸侯)가 천자(天子)를 조회하는 것인데, 봄에 하는 것을 조(朝), 가을에 하는 것을 청(請)이라 한다. 여기서는 백관의 조회 받는 것을 말한다. 조청려【照靑藜】유향(劉向)이 천록각(天祿閣)에서 교서(校書)를 하면서 전심치지로 거기에만 몰두하고 있었는데, 밤에 어느 노인이 나타나 청려장(靑藜杖)을 꽂아 두고 문을 두드렸다가 유향이 어둠 속에서 혼자 앉아 글 외우는 것을 보고는 그 노인이 청려장 꽂아둔 데로 다시 가서 그 지팡이 끝을 입으로 부니 거기에서 환한 빛이 발하여 유향에게로 비추어 주었다고 함. 《拾遺記》 조체행상면【棗蔕幸相免】삼국 시대 위(魏) 나라 조식(曹植)이 형인 문제(文帝)로부터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위 문제가 동생인 임성왕(任城王) 조창(曹彰)을 시기하여, 대추 꼭지에 몰래 독(毒)을 발라 놓고는 함께 바둑을 두면서, 자기는 먹어도 좋은 것만을 골라서 먹고 조창에게 먹을 것을 권하여 교묘하게 독살시킨 고사가 있다. 그 뒤에 조식(曹植)도 치죄(治罪)하여 죽이려 하였으나, 태후(太后)가 이를 알아차리고 진노하는 바람에 폄작(貶爵)하는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 《世說新語 尤悔》 조최【漕漼】철벅철벅. 의성어로 물을 건너갈 때 나는 소리.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200/1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