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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금시부고【從今矢不告】시골에 내려와 사는 즐거움을 혼자서 온전히 간직하겠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고반(考槃)에 “그릇 두드리며 언덕에서 노래하니 대인이 은거하여 사는 곳이로다. 혼자 잠들고 일어나는 생활이지만 길이 맹세코 남에게 알리지 않으리라[考槃在陸 碩人之軸 獨寐寤宿 永矢弗告]”라고 하였다. 종기【鍾期】종자기(鍾子期)인데 백아(伯牙)와 종자기의 고사를 말한다. 《列子 湯問》 종기【鍾期】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 유백아(兪伯牙)의 지음(知音)인 종자기(鍾子期)를 말한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더 이상 세상에 지음이 없다고 하면서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린 고사가 있다. 《呂氏春秋 本味》 종기사【鍾期死】종자기와 백아(伯牙)는 모두 춘추 시대 초(楚) 나라 사람인데,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그 소리를 듣고서 백아의 심정을 환히 알았으므로, 종자기가 죽은 뒤에는 백아가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여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 타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종남경【終南逕】종남첩경(終南捷逕)의 준말로, 당(唐) 나라 때 노장용(盧藏用)이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하자 세상 사람들이 그를 경모(敬慕)하여 그의 이름이 높이 알려져서 벼슬길이 열리게 되었으므로, 종남산 속에 있는 것이 벼슬길의 첩경이 된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 《唐書 盧藏用傳》 종남산【終南山】당나라 서울의 종남산이므로 한양의 남산도 종남산이라 쓴다. 종남산【終南山】목멱산(木覓山) 즉 서울의 남산을 가리킨다. 종남산【終南山】장안(長安)의 남산이다. 종남엄로【終南儼老】당나라 종남산에 지엄(智儼)이란 고승(高僧)이 있었다. 종남첩경【終南捷徑】출세(出世)와 영달(榮達)의 지름길. 목적 달성의 지름길을 일컫는 고사성어. 종남홍동【終南澒洞】근심이 끝없이 많음을 비유한 말. 종남은 종남산을 이른 말이고, 홍동(鴻洞)은 연속된다는 뜻으로, 두보(杜甫)의 자경부봉선현영회(自京赴奉先縣詠懷) 시에 “근심의 끝이 종남산과 가지런하여, 연속되는 근심을 걷을 수가 없네.[憂端齊終南 鴻洞不可掇]"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陸詩集 卷四》 종담【鍾譚】종성(鍾惺)과 담원춘(譚元春)을 말하는데, 다같이 명(明) 나라 경릉(竟陵) 사람으로, 시(詩)에 조예가 깊어 고시귀(古詩歸)ㆍ당시선(唐詩選) 등을 평선(評選)하였다. 종대사분【宗岱祠汾】한 무제(漢武帝) 때 분음에서 보정(寶鼎)을 얻고 나서는 감천궁(甘泉宮)에 분음사(汾陰祠)를 세워 제사를 지낸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천자의 의식을 뜻한다. 종동기수거【終童棄繻去】한(漢)나라 종군(終軍)이 시골서 서울로 가는데 관(關)에 들어갈 때에 지키는 관원이 백부(帛符)를 주면서, “이것을 가져야 뒷날 관에 나올 때에 증명이 된다.” 하였다. 종군은 그것을 집어 던지며, “내가 나올 때에 임금의 명령으로 절(節)을 가지고 올 터인데 이것은 필요 없다.” 하였다. 종두득두【種豆得豆】콩을 심으면 콩을 얻음. 원인에 따라 그에 맞는 결과가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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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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