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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재【直齋】김종후(金鍾厚)의 호이다. 직지사자【直指使者】한 나라 때 조정에서 직접 지방에 파견하여 문제를 처리하게 했던 벼슬로 우리나라의 암행어사와 같다. 직하【稷下】전국시대 제(齊)나라 도성 임치(臨菑)의 직문(稷門)에 있던 땅 이름. 제 선왕(齊宣王)이 학사와 유세하는 선비를 좋아하여 직문에 학관(學館)을 지어놓고 추연(騶衍)ㆍ순우곤(淳于髡)ㆍ전병(田騈)ㆍ접자(接子)ㆍ신도(愼到)ㆍ환연(環淵)등 76인을 초빙하여 집을 주고 상대부(上大夫)로 삼아 직무는 없이 토론만 하게 하였다. 맹자 또한 제 선왕을 찾아가 왕도정치를 권한 적이 있다. 《史記 卷七十四 孟子荀卿列傳》 직하【稷下】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제 선왕(齊宣王)이 학자를 우대하자 당대의 학자들이 모두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던 제 나라의 도시 이름이다. 직하유속【稷下遺俗】학자의 기풍을 뜻함.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직하에는 추연(騶衍)ㆍ순우곤(淳于髡)ㆍ신도(愼到)ㆍ환연(環淵)ㆍ접자(接子)ㆍ전변(田騈) 등의 학자들이 각각 치란(治亂)에 관한 일을 담론하였다 한다. 《史記 卷七十四》 직하풍류【稷下風流】직하는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지명인데, 전국 시대 제 선왕(齊宣王)이 학자를 크게 우대함으로써 당시에 천하의 학자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들었던 데서 온 말이다. 직하현【稷下賢】직하는 제(齊)나라에 있는 지명. 제의 선왕(宣王)이 문학에 능하고 말 잘하는 선비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당시 많은 쟁쟁한 문사들이 제 나라로 몰려들어 제 나라에서는 직하관(稷下館)을 두고 거기에다 수용하였음. 《史記 田敬仲世家》 진【陣】권세가들이 사사로이 설치한 농장의 일종임. 광해군 때 유희분(柳希奮), 박승종(朴承宗)등의 권세가들이 전토를 광점(廣占)하고, 역(役)을 피하여 도망한 무리들을 많이 모아 의방에 사사로이 설치한 농장으로서, 그 폐단이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진【塵】불교에서는 겁(劫)이라 하고, 도가(道家)에서는 진(塵)이라 하는데, 천지(天地)의 시종(始終)을 말한다. 진【嗔】성내다. 화내다. 진가【秦家】혼란스러웠던 진(秦) 나라 궁가(宮家)라는 뜻이다. 진가도적【秦家圖籍】소하(蕭何)가 한 패공(漢沛公)을 따라 함양(咸陽)에 들어가서 율령도서(律令圖書)를 먼저 보관하였는데, 이것이 후일에 한 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 큰 공업을 이룩하게 되었다. 《史記 卷五十三 蕭相國世家》 진가병【陳家餠】진가는 곧 당(唐) 나라 때 진경선(陳敬瑄)을 이름. 그가 젊어서 떡장사를 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진갈【秦碣】진갈은 진 나라 시대에 세운 수많은 석갈(石碣)에 새겨진 옛 서체(書體)를 가리킨 말이다. 진갑【進甲】62세 환갑(還甲)보다 한 해 더 나아간[進] 나이라는 뜻. 진강초도마【晉江初渡馬】동진(東晉)이 강동(江東)으로 천도(遷都)했음을 말한다. 말[馬]은 진 나라의 성이 사마(司馬)였으므로 한 말인데, 진 나라는 오호(五胡) 십육국(十六國)의 난에 시달려 원제(元帝) 때에 결국 강을 건너 강동으로 천도한 때문에 동진이라 불리게 되었다. 진강후【晉康侯】최충헌(崔忠獻)이니, 고려 때 권신(權臣)으로서 진강군개국후(晉康郡開國侯)에 봉해졌다. 진갱지사【秦硎之士】갱(硎)은 갱(阬)과 같은 뜻으로, 진갱의 선비란 곧 진 시황(秦始皇) 때 함양(咸陽)에 생매장된 3백 60여 인의 선비를 말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진갱한고【秦坑漢錮】진(秦) 나라에서는 선비들이 소용없이 떠들기만 한다 하여 큰 구덩이를 파고 460여 명의 선비들을 산채로 쓸어 묻었었다. 한 나라 말년에는 선비들이 나라의 정치를 논평한다고 수백명의 명사들을 모두 금고형(禁錮刑)에 처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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