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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상대【兩蘇相對】송(宋)의 소식(蘇軾)ㆍ소철(蘇轍) 두 형제가 영해(嶺海)로 귀양살이 가 있을 때 누구 하나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宋史 巢谷傳》 양소아【楊小兒】후한(後漢) 때 유표(劉表)가 은근히 예형(禰衡)에게 “지금 천하의 명사(名士)는 누구누구이냐?" 묻자 “대아(大兒)로는 공융(孔融), 소아로는 양수(楊修)가 있을 뿐이다.”고 거만스레 대답하였다. 양소전촉부전언【良宵剪燭負前言】멀리 떨어져 있던 벗들끼리 다시 모여 지난 추억을 밤새워 이야기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다. 당(唐) 나라 이상은(李商隱)이 촉(蜀) 땅에서 지은 시 ‘야우기북(夜雨寄北)’에 “돌아갈 날 묻는다만 기약을 할 수 있나, 파산의 밤비 소리 가을 못에 넘쳐나네. 언제쯤 창문 아래 등불을 켜고 함께 앉아, 파산의 밤비 얘기 나누어 볼꼬.[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剪西窓燭 卻話巴山夜雨時]”라는 표현이 있다. 양속현어【羊續懸魚】뇌물 가져오는 것을 거절하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에 “양속이 남양 태수(南陽太守)로 있을 적에 부승(府丞)이 생선을 선물로 보내오자 속이 그걸 받아서 뜰에 매달아 두었는데, 부승이 또 가져오자 속이 전일에 받았던 것도 아울러 내주어 그의 뜻을 거절하였다.” 하였다. 양손장라【楊孫葬裸】한(漢) 나라 때 양왕손은 황로(黃老)의 학술을 익힌 사람으로서, 그는 임종시에 자식에게 유명을 내려 나장(裸葬)을 하도록 하였다. 《漢書 卷六十七》 양수【瀼水】기주부(夔州府)에 있는 강. 양수【楊脩】후한 때 사람으로 학문을 좋아하고 재주가 뛰어났다. 조조(曹操)의 주부(主簿)로 있으면서 조조와 재주를 겨루고, 조조의 뜻을 미리 알아맞혔다가 조조의 시기를 받아 살해되었다. 《後漢書 卷54 楊震列傳 楊脩》 양수겸장【兩手兼將】하나의 표적에 대하여 두 방향에서 공격해 들어감. 양승암【楊升庵】승암은 양신(楊愼)의 호. 양시【楊時】송 나라 남검주(南劍州) 장락(將樂) 사람으로 자는 중립(中立)이고, 호는 귀산(龜山)이다. 일찍이 우간의대부 겸국자좨주(右諫議大夫兼國子祭酒)와 공부 시랑(工部侍郞)등 벼슬을 지내다가 그만두고 학문에 전념하여 정자(程子) 문하 사대제자(四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양신【楊愼】명(明) 나라 학자. 자는 용수(用修), 호는 승암(升菴). 기송(記誦)에 해박했고, 저서에는 승암집(升菴集) 81권이 있음. 양아【陽阿】고악곡(古樂曲)의 이름. 양악【陽岳】안악(安岳)의 옛 이름이다. 양앙【梁鴦】주 선왕(周宣王) 때 목정(牧正). 야생 동물을 잘 길렀으므로 왕이 신임하였으며, 동물들이 잘 따랐다. 양액【楊厄】" 황양나무가 윤달[閏月]의 액운을 만난다.”는 말을 줄여 쓴 말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이 나무가 한 해에 겨우 한 치쯤 자라나는데 윤달이 있는 해에는 한 마디가 줄어든다.” 하였다. 양액생풍【兩腋生風】좋은 차를 찬미하는 말로서, 노동(盧仝)의 ‘주필사맹간의 기신다시(走筆謝孟諫議 寄新茶詩)’에 “일곱 잔을 마시면 양쪽 겨드랑이 밑에 맑은 바람이 일어난다.” 하였다. 양액청풍【兩腋淸風】양액(兩腋)의 청풍(淸風)이란 바로 노동이 차(茶)를 좋아하여 차를 예찬하는 시에서 “…… 다섯 잔을 마시면 기골이 맑아지고, 여섯 잔을 마시면 선령이 통하고, 일곱 잔은 미처 다 마시기도 전에 두 겨드랑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남을 느끼게 된다.[五椀肌骨淸 六椀通仙靈 七椀喫不得 唯覺兩腋習習淸風生]"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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