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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王祥】진(晉) 나라 때 효자(孝子). 자기에게 모질게 대하는 계모(繼母)에게 극진히 효도하였는데 추운 겨울날 그 어머니가 물고기를 먹고 싶어하자 왕상이 냇물에 나가 고기를 잡기 위해 얼음을 깨려 하니, 얼음이 갑자기 저절로 깨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뛰어나오므로 그것을 가져다가 어머니를 봉양했다 한다. 《晉書 卷三十三 王祥傳》 왕생【王生】한(漢) 나라 때의 처사(處士)로서 일찍이 황로(黃老)의 도를 닦았고, 기발한 계책으로 죽임을 당하게 된 정위(廷尉) 장석지(張釋之)를 구해 주기도 했다.《漢書 卷五十》 왕생읍우의【王生泣牛衣】왕장이 제생(諸生)이 되어 장안(長安)에서 공부할 적에 아내와 함께 있었다. 왕장이 병이 들자 이불이 없어 우의(牛衣)를 덮고 누워서 그 아내와 이별할 것을 결단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고사이다. 《漢書 卷七十六 王章傳》우의(牛衣)는 즉 짚으로 엮은 거적을 말한다. 왕섭령【王葉令】후한 현종(顯宗) 때에 왕교(王喬)가 섭현(葉縣)의 원이 되었는데 신술(神術)이 있었다. 그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는 반드시 와서 조회하니 명제(明帝)는 그가 자주 오는데도 거마(車馬)를 볼 수 없으므로, 태사(太史)를 시켜 지켜보게 했다. 쌍오리가 남쪽에서 날아오기에 그물로 잡았는데 한 쌍의 신[舃]을 얻었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一百十一》 왕세정【王世貞】명(明) 나라 때 시문(詩文)으로 이름이 가장 높았던 사람으로서 이반룡(李攀龍) 세상에서는 ‘왕리(王李)’라고 병칭하였다. 왕소군【王昭君】전한(前漢) 효원제(孝元帝)의 궁녀(宮女)로 이름은 장(嬙), 소군은 그의 자이다. 명비(明妃)라고도 한다. 그는 황제의 칙명(勅命)으로, 흉노(匈奴) 호한선우(呼韓單于)에게 시집갔다. 원제가 후궁이 매우 많아 일일이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화공을 시켜 그림을 그려오게 하여 시중들 여인을 고르곤 하였다. 이에 후궁들이 모두 화공에게 뇌물을 써서 자기 모습을 잘 그려주기를 청하였는데, 왕소군은 뇌물을 쓰지 않음으로 인해서 천자를 모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흉노(匈奴)가 그들의 왕비인 알씨(閼氏)로 삼을 미인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왔기에, 그림을 보고 왕소군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런데 왕소군이 흉노로 떠날 때 원제가 그녀를 불러서 보니 후궁 가운데 제일의 미인이었으므로 노하여 화공들을 모두 처형했다. 왕소군은 흉노의 왕비가 되어 그곳에서 죽었으며, 그녀의 무덤을 청총(靑塚)이라 한다. 《西京雜記 卷二》 왕손【王孫】귀공자란 뜻으로 존칭(尊稱)임. 왕손【王孫】왕손은 왕자(王者)의 자손을 이르는데,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에 “왕손은 놀러 나가 돌아오지 않고 봄 풀은 나서 무성하구나[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하였다. 왕손불귀 춘초처처【王孫不歸 春草萋萋】초사(楚辭) 회남소산왕(淮南小山王) 초은사(招隱士)에 “왕손은 놀러 나가 돌아오지 않는데, 봄풀은 저절로 나서 무성하구나.[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 하였다. 왕손유불반【王孫遊不返】왕손(王孫)은 귀족의 자제를 가리키는 말로, 초사(楚辭) 회남소산(淮南小山) 초은사(招隱士)의 “왕손은 놀러 나가 돌아오지 않고, 봄풀만 무성하게 자라났도다.[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왕손유선령【王孫有先令】한(漢) 나라 양왕손(楊王孫)이 황로학(黃老學)에 심취한 데다 당시의 후장(厚葬)하는 세태를 바로잡으려는 마음에서, 병들어 죽기 전에 아들에게 유언하기를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땅속에 들어가 자연의 도를 따르려 하니 내 뜻을 어기지 말라. 죽으면 포대로 시신을 감싸서 일곱 자 땅 밑에 집어넣은 뒤 곧바로 발 있는 부분부터 포대를 꺼내 직접 살이 땅에 닿도록 하라.”고 하였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7 楊王孫傳》 왕손초【王孫草】궁궁이[蘼蕪]의 별칭으로 향기가 많은 약초이다. 멀리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할 때 쓰는 말로, 한(漢) 나라 회남(淮南) 소산(小山)의 초은사(招隱士)에, “왕손은 노닐면서 돌아오지 않고, 봄풀은 나서 무성하구나.[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 한 데서 온 말이다. 왕손초【王孫草】회남소산(淮南小山)이 지은 초사(楚辭)인 초은사(招隱士)의 “왕손의 노닒이여 돌아가지 않고, 봄풀이 자람이여 우거졌도다.[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에서 온 말로, 고향땅을 떠난 사람의 수심을 불러일으키는 정경을 표현할 때 흔히 쓰인다. 왕쇄장참주일착【枉碎長鑱鑄一錯】줄(톱을 쓰는 기구)인데 그 음이 착오(錯誤)란 착(錯) 자(字)와 같으므로 이렇게 썼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 200/10/20/30/40/50/60/70/80/90/300/10/20/30/40/50/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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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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