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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양주【靈丹良疇】사람의 배꼽 밑에 단전(丹田)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선가(仙家)의 양생법(養生法)에 단전에 결단(結丹)한다는 말이 있다. 영당【令堂】살아 계신 남의 어머니를 일컬음. 영당【鈴堂】영당은 장수 혹은 지방 장관의 거소인 영각(鈴閣)을 말한다. 영대【靈臺】영부(靈府)와 같은 말인데 마음을 이름. 영대【靈臺】주(周) 나라 문왕(文王)의 누대 이름으로 천기(天氣)를 살펴보던 곳이다. 시경(詩經)에 영대편이 있음. 영대상분【靈臺祥氛】영대는 운기(雲氣)를 관측하는 천문대(天文臺)의 유이고, 상분(祥氛)은 상서와 요기를 이르는 것으로, 즉 옛날 영대에서 운기의 상서와 요기를 관찰했던 것을 말한다. 《詩經 大雅 靈臺》 영대영소【靈臺靈沼】시경(詩經) 대아(大雅) 영대(靈臺)에 “문왕이 영대를 짓는데 백성들이 일을 도와 불일성지(不日成之)했으며, 왕이 영소를 지으니 아름다운 물고기가 뛰논다.” 하였는데, 맹자(孟子)는 이를 찬양하여 “문왕이 백성의 힘을 빌어 대를 짓고 못을 팠으나, 백성들은 그의 덕화에 젖어 도리어 즐거워했다.” 하였다. 영대일편【靈臺一片】배도의 화상자찬(畫像自贊)에 “爾貌不揚 爾身不長 胡爲將 胡爲相 一片靈臺 丹靑莫狀" 이라 하였는데 여기 보이는 영대는 마음을 말함. 영도【郢都】초나라의 도읍. 지금의 호북성 강릉 영도교【永渡橋】서울 동대문 밖 개천 하류에 있던 다리 이름이다. 영락대전【永樂大全】총서(叢書)의 이름. 명(明) 나라 영락(永樂) 원년(1403)에 해진(解縉) 등이 명을 받아 편찬한 일대 유서(類書)이다. 그 뒤에 전화(戰火)로 소실되어 현재는 5백여 권만 남았다. 영락비【永樂碑】영락은 명 성조(明成祖)의 연호. 영락비는 성조가 연경(燕京)으로 수도를 옮기고 세운 기념비. 영랑【伶郞】심명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랑【令郞】남의 아들을 일컬음. 영랑【永郞】신라(新羅) 효소왕(孝昭王) 때의 화랑(花郞)으로, 술랑(述郞), 남랑(南郞), 안상(安詳) 등과 더불어 이른바 사선(四仙)의 하나로 꼽힌다. 전설에 의하면 이들이 금강산에서 수련하고 무술대회에 나가기 위하여 삼일포(三日浦)에서 3일 동안 쉬다가 금성(金城)으로 가는 길에 영랑호(永郞湖)에 도착하였는데, 영랑이 이 호반의 풍경에 도취된 나머지 대회 참석도 잊고 그만 거기에서 노닐었으므로, 호수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영랑술랑【永郞述郞】모두 신라(新羅) 때의 신선으로서 남석랑(南石郞)ㆍ안상랑(安祥郞)과 함께 네 신선이 강원도 고성군(高城郡)의 한 호수에서 3일 동안 놀았다 하여 이 호수를 삼일포(三日浦)라 하였고, 또 여기에 사선정(四仙亭) 등의 고적이 있기도 하다. 영려상승【嬴呂相承】진(秦) 나라 왕의 성은 영(嬴)씨였다. 그런데 진시황(秦始皇)은 그 영씨가 아니요 여불위(呂不韋)라는 사람의 자식이라 하였었다. 영령【泠泠】음성이 맑고 시원한 모양, 물이 흐르는 소리의 형용, 낙숫물 소리의 형용, 바람 소리의 형용, 말고 시원한 형용, 심중이 맑고 깨끗한 형용 영령【令令】개의 목에 단 방울 소리를 형용하는 말 영령성악강【英靈星岳降】예전에 명현들은 하늘의 별이나 땅 위에서도 높고 큰 산의 정기를 타고서 탄생한다 하여 성악(星岳)에서 내려 왔다고 했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 200/10/20/30/40/50/60/70/80/90/300/10/20/30/40/50/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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