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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릉구적【嚴陵舊迹】자릉(子陵)은 은사로 유명한 엄광(嚴光)의 자. 한 광무(漢光武)가 세 차례나 초빙했어도 끝내 응하지 않고 동강(桐江)에 숨어 낚시질로 낙을 삼았다. 《後漢書 高士傳》 엄릉수항장【嚴陵收骯髒】숨어 살리라는 고집을 버리고 왕의 부름에 응함. 엄릉은 자가 자릉(子陵)인 엄광(嚴光). 한 광무(漢光武)가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에 함께 공부하던 사이였는데, 광무가 즉위하자 변성명을 하고 숨어 나타나지 않다가 광무가 물색 끝에 찾아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하였으나 받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 밭 갈고 고기 낚으며 여생을 마쳤음. 여기서는 자릉이 광무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한 번 만났던 그 사실을 취하여 원용한 것임. 《後漢書 卷八十三》 엄목포작【掩目捕雀】눈을 가리고 참새를 잡으려 한다. 일을 성취하려면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 엄무【嚴武】당(唐) 나라 사람. 자는 계응(季鷹). 숙종(肅宗) 때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로서 토번(吐蕃)을 격파한 공으로 예부 상서(禮部尙書)에 승진되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짐. 엄문【掩門】문을 닫아걸다. 엄상【嚴霜】찬 서리. 엄서【嚴徐】엄서는 한 나라 때 제(齊) 나라 엄안(嚴安)과 조(趙) 나라 서악(徐樂)을 합칭한 말인데, 이들이 함께 상서(上書)하여 세무(世務)를 진술한 결과, 천자가 그들을 불러보고는 이르기를 “공(公)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는가? 어찌 이리 늦게야 만났단 말인가.”고 했다 한다. 《史記 主父偃傳》 엄승도현석【釅勝倒玄石】술맛의 진하기가 현석(玄石)이 마셨던 천일주(千日酒)보다 훨씬 낫다는 말. 엄안【嚴安】엄안(嚴安)은 한(漢) 나라 때 사람으로 임금에게 세무(世務)를 상주하여 갑자기 등용되었었다. 《漢書 卷六十四》 엄안【嚴顔】후한(後漢) 건안(建安) 19년(214)에 장비가 파주(巴州)를 공격하여 파주 태수(巴州太守) 엄안을 사로잡은 뒤, 성난 목소리로 “대군이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항복하지 않고 감히 항거하였는가.” 하면서 목을 베려고 하였는데, 엄안이 안색을 변치 않고 “우리 파주에는 머리 잘리는 장군은 있을지언정 항복하는 장군은 있지 않다. 목을 치려면 칠 것이지 어째서 성을 내는가.”라고 의연하게 대답을 하자, 장비가 장하게 여겨 풀어 주고 빈객으로 대접했던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36》 엄억【掩抑】움츠려 듦. 엄억백통무【掩抑伯通廡】후한 때의 은사(隱士) 양홍(梁鴻)이 오(吳)에 가서 부호가인 고백통(皐伯通)의 사랑채를 얻어 살면서 남의 집에 품팔이로 생활을 하였던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남의 협실(夾室)에 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後漢書 卷八十三》 엄엄【揜揜】눈이 가리어져 밖이 보이지 않음 엄엄【晻晻】빛이 점점 약해지는 모양, 어두운 모양 엄엄【奄奄】숨이 곧 끊어질 듯한 모양, 생기가 없는 모양, 어두운 모양 엄엄【掩掩】향기가 짙게 풍기는 모양 엄여하일【嚴如夏日】진(晉) 나라 대부 조순(趙盾)이 엄하므로, 사람들이 “조순은 여름의 해이다. 여름 해는 두렵다.” 하였다. 엄이도령【掩耳盜鈴】귀를 막고 방울을 훔친다는 뜻으로, 자기에게 들리지 않으면 남에게도 들리지 않는 줄 아는 어리석은 행동을 일컫는다. 엄이도종(掩耳盜鐘). 엄인【閹人】환관(宦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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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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