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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豫樟】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인 녹나무이다. 술이기(述異記)에 “예장은 7년을 자라야 알아볼 수 있다. 한 무제(漢武帝) 보정(寶鼎) 2년에 예장관(豫樟官)을 설치하고 곤명지(昆明池) 가운데에 예장전(豫樟殿)을 건축하였다.”고 하였다. 예장【豫章】녹나무의 일종. 천하에 이름 높은 재목으로 일컬어진다. 산해경(山海經) 주(註)에, “예장(豫章)은 큰 나무인데 추(楸)와 같다.” 하였음. 예장【豫章】침목(枕木)과 장목(樟木)의 병칭으로, 흔히 동량지재(棟梁之材)로 쓰이는 거목이다. 예장유자【豫章孺子】유자(孺子)는 후한(後漢) 서치(徐穉)의 자(字)이다. 벼슬에 응하지 않고 남주(南州)의 고사(高士)로 일컬어졌으며, 태수(太守) 진번(陳蕃)으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는데, 그의 고향이 바로 예장(豫章)의 남창(南昌)이다. 《後漢書 卷84》 예장천심죽전조【豫章千尋竹箭稠】죽(竹)은 대죽(大竹), 전(箭)은 소죽(小竹)으로서 즉 대소(大小)의 인재들이 천하의 명목(名木)인 예장(豫章)처럼 길러지고 있다는 말이다. 예정【霓旌】오색 깃털로 만든 깃발로, 천자(天子)의 의장(儀仗) 가운데 하나이다. 예정리【曳鄭履】한 애제(漢哀帝) 때 상서복야(尙書僕射) 정숭(鄭崇)이 직간을 잘하기로 유명했는데, 그는 임금을 뵈러 대궐을 들어갈 때마다 가죽신을 끌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七十七》 예좌【猊座】부처를 가리킴. 부처는 사람 가운데 지극히 높은 존재라 하여 백수(百獸)의 왕(王)인 사자(獅子)에게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예좌【猊座】사자 모양으로 만든 불좌(佛座), 부처나 고승(高僧)이 앉는 자리를 말한다. 예주【蕊珠】꽃과 구슬로 꾸민 궁전(宮殿)을 말한다. 예주【蕊州】예주는 지금의 충주(忠州)이다. 예주【睨柱】전국(戰國) 시대 때 조(趙) 나라 인상여(藺相如)가 왕명(王命)으로 화씨벽(和氏璧)을 가지고 진(秦)의 15성(城)과 바꾸려 진정(秦廷)에 가서 구슬을 소왕(昭王)에게 바쳤더니 왕이 받고 성을 줄 뜻이 없는지라, 상여가 계교로 구슬을 도로 받아들고 이내 몇 걸음을 물러나 돌기둥을 흘기며, “억지로 이 구슬을 빼앗으려면 이 구슬이 신(臣)의 머리와 함께 기둥에 부딪쳐 부숴지리이다.” 하였다. 사기(史記) 예주【蘂州】충주(忠州)의 옛 이름으로 예성(蕊城)이라고도 한다. 예주경【蕊珠經】도교(道敎)의 경전 이름이다. 예주궁【蕊珠宮】도교의 경전에 나오는 전설상의 선궁(仙宮)인데, 여기서는 절을 뜻하는 듯하다. 예지사일【羿之射日】요(堯) 임금 때에 해 열 개가 한꺼번에 뜨니 초목이 모두 마르므로, 후예(后羿)가 활로 쏘아 아홉 해를 떨어뜨렸다 한다. 예착【羿浞】하(夏) 나라 때 있었던 오랑캐 나라의 임금들로, 모두 사냥이나 포악한 짓을 일삼다가 나라를 망치고 자신을 망친 사람들이다. 예는 궁(窮) 나라의 임금이었는데,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착(浞)을 총애하다가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으며, 예 대신에 나라를 차지한 착 역시 포악한 짓을 하다가 나라를 망쳤다. 예착상위【枘鑿相違】예는 둥근 장부를 말하고 착은 네모진 구멍을 뜻한 것으로, 둥근 장부를 네모진 구멍에 넣으면 맞지 않듯이 쌍방(雙方)이 서로 맞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예찬【倪瓚】원(元) 나라 때의 문인화가(文人畫家)로서 산수화(山水畫)에 극치를 이루었고 시(詩)에도 뛰어났다. 예찬의 자는 원진(元鎭), 호는 예우(倪迂)이다. 시ㆍ서ㆍ화에 모두 뛰어났는데, 명(明) 나라가 창업함에 이르러 그는 대삿갓을 쓰고 일엽편주를 타고서 진택(震澤)ㆍ삼묘(三泖) 사이를 왕래하며 숨어살았다. 《明史 卷二百九十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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