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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五侯】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으로, 현달한 관원의 집안을 가리킨다. 오후【五侯】오후는 곧 한 성제(漢成帝)의 외삼촌이 되는 평아후(平阿侯) 왕담(王譚), 성도후(成都侯) 왕상(王商), 홍양후(紅陽侯) 왕립(王立), 곡양후(曲陽侯) 왕근(王根), 고평후(高平侯) 왕봉시(王逢時) 등 다섯 사람으로, 같은 날에 봉작되었으므로 세칭 오후라 한다. 그들은 외인(外人)과는 왕래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서로 시새워가면서 산해진미만 먹으며 음식과 거처에 극도의 사치를 하였다. 《漢書 卷九十八 元后傳》 오후가【五侯家】권세가(權勢家)들의 집을 뜻한다. 오후구택만창태【五侯舊宅謾蒼苔】역시 인생의 허무함을 뜻하는 말이다. 오후는, 한 성제(漢成帝)의 외척(外戚)으로 후(侯)에 봉해진 다섯 왕씨(王氏) 즉 평아후(平阿侯) 왕담(王譚)ㆍ성도후(成都侯) 왕상(王商)ㆍ홍양후(紅陽侯) 왕립(王立)ㆍ곡양후(曲陽侯) 왕근(王根)ㆍ고평후(高平侯) 왕봉시(王逢時)를 가리키는데, 이들은 황실(皇室)의 외척으로 음식과 거처에 극도의 사치를 하였다. 오후봉【五侯封】후한(後漢) 왕씨(王氏)가 오후(五侯)를 모두 봉하니, 그날에 누른 안개가 사면에 온종일 꽉 끼었다. 오후정【五侯鯖】서로 맞지 않은 여러 집의 어물(魚物) 육류(肉類)를 한데 넣어 끓인 열구자(悅口子)를 말한다. 전한(前漢) 성제(成帝) 때 소위 왕씨 오후(王氏五候)인 평아후(平阿候)ㆍ성도후(成都候)ㆍ홍양후(紅陽候)ㆍ곡양후(曲陽候)ㆍ고평후(高平候)가 서로 시기하고 세력 다툼을 하여 빈객(賓客)들도, 이 집에 출입하는 자는 저 집을 가지 못하고 하였는데, 유독 누호(婁護)라는 자는 다섯 집을 다 드나들면서 비위를 맞추고 그 각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한 데 넣어 끓여 잡탕을 만들어 먹었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일러 오후잡탕[五候鯖]이라 하였다 한다. 《西京雜記》 오후지관【五侯池館】한(漢)나라 성제(成帝)가 그의 외숙 왕담(王譚) 등 다섯 사람을 동일(同日)에 후(侯)로 봉하여 오후(五侯)라 칭하는데, 여기서는 부귀한 집안이라는 말이다. 오후청【五侯鯖】청은 산해의 진미를 섞어 끓인 음식을 말함. 한 성제(漢成帝) 때 다섯 국구(國舅)로서 같은 날 똑같이 제후(諸侯)에 봉해진 즉 왕담(王潭)ㆍ왕근(王根)ㆍ왕립(王立)ㆍ왕상(王商)ㆍ왕봉시(王逢時) 등 오후의 집을, 누호(婁護)라는 사람이 차례로 드나들면서 각 집의 진기한 반찬을 얻어내어 이를 섞어서 끓여 손님을 접대했는데, 이것을 오후청이라 한다. 오훈【五葷】고기와 같이 불제자가 먹지 않아야 할 다섯 가지의 매운 채소. 마늘ㆍ부초ㆍ파ㆍ달래ㆍ흥거(興渠), 오신(五辛)이라고도 한다. 오흥【吳興】오흥 땅에 살았던 원(元) 나라의 저명한 서화가(書畫家) 조맹부(趙孟頫)를 가리킨다. 오흥【吳興】유오흥(柳吳興), 즉 오흥 태수(吳興太守)를 두 번이나 역임한 남조 양(梁)의 시인 유운(柳惲)을 가리킨다. 오흥【吳興】절강성(浙江省)에 있는 현(縣) 이름으로, 여기서는 중국 남쪽 지방을 가리킨다. 오흥【吳興】회계(會稽)의 고호(古號)이며 명필 왕희지를 가리킨다. 오흥법【吳興法】서예에 있어 조맹부체(趙孟頫體)를 이르는 말로, 조맹부가 오흥(吳興) 사람이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오희【吳姬】오(吳)의 미녀. 옛 시에 많이 인용됨. 오희【五噫】오희는 가사(歌詞) 끝에 탄식하는 뜻으로 희(噫) 자를 붙인 것을 말한다. 후한 때의 은사였던 양홍(梁鴻)은 경사(京師)를 지나면서 수많은 토목공사에 백성들이 시달림을 받는 것을 보고서 비통한 뜻을 담아 다섯 마디로 된 마디 끝마다 ‘희(噫)’자를 써서 오희가(五噫歌)를 지었는데 숙종(肅宗)은 그 내용을 보고 슬퍼하여 찾으려 하였으나 그는 끝내 만나지 않았다. 《後漢書 梁鴻傳》 오희가【五噫歌】후한(後漢) 때 맑은 지조의 소유자 양홍(梁鴻)이 경사(京師)를 지나가며 5구(句)의 시를 지었는데, 구절마다 모두 ‘희(噫)’로 끝냈으므로 ‘오희가(五噫歌)’로 불리게 되었다. 건축 공사에 시달리는 백성의 고달픔을 비통하게 읊은 노래로서, 즉 “저 북망을 오름이여, 슬프다! 서울을 돌아봄이여, 슬프다! 궁실이 드높음이여, 슬프다! 사람들의 수고로움이여, 슬프다! 아득한 미앙궁이여, 슬프다! [陟彼北芒兮 噫 顧覽帝京兮 噫 宮室崔嵬兮 噫 人之劬勞兮 噫 遼遼未央兮 噫]" 라고 한 것이다. 《後漢書 卷八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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