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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새맹진【欲塞孟津】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항하는 것을 말한다. 동한(東漢) 초에 주부(朱浮)가 대장군이 되어 북변(北邊)을 토평하였는데, 어양 태수(漁陽太守)로 있는 자가 항명하였다. 그러자 주부가 그에게 말하기를, “지금 천하가 몇 리이고 열군이 몇 성인가. 어찌하여 자그마한 어양을 가지고 천자와 원한을 맺으려고 하는가. 이는 황하 물가에 사는 사람이 흙을 손으로 떠다가 맹진을 막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다. 《後漢書 卷33 朱浮列傳》 욕소필연【欲燒筆硯】붓과 벼루를 태워버리고 싶다. 남이 지은 문장의 뛰어남을 보고 자신의 재주가 그에 미치지 못함을 탄식하는 말이다. 욕속부달【欲速不達】빨리 가고자 하면 도달하지 못함. 일을 너무 빨리 하려 욕심을 내다보면 오히려 일을 이루지 못함 욕수【蓐收】가을을 맡은 신(神)의 이름.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孟秋三月 其神蓐收”라고 보임. 서방 소음신. 욕식【蓐食】이른 아침에 이부자리 안에서 급히 식사를 함을 말함. 욕일【浴日】욕일은 희화(羲和)가 해를 나오게 해서 감천(甘泉)에 목욕을 시킨 것을 말한다. 욕전【浴殿】궁금(宮禁)의 안에 있는 욕실(浴室)을 가리킨다. 욕전【浴殿】욕전은 대궐 안의 욕실(浴室)로, 당(唐) 나라 때 황제가 문인 학사를 이곳에 불러들였다고 하며, 시종신이 임금 가까이에서 일을 아뢸 때에는 구취(口臭)를 없애기 위해 계설향을 입에 물었다고 한다. 욕좌목후도사해【欲佐沐猴圖四海】항우(項羽)를 가리킴. 어떤 사람이 항우에게 관중(關中)에 도읍을 하라고 충고했으나, 항우가 그 말을 듣지 않고 고향으로만 돌아가려 하므로, 항우가 원숭이처럼 성질이 조급하고 포학하다는 뜻에서 그가 “초(楚) 나라 사람은 원숭이가 관(冠)을 쓴 격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史記 項羽紀》 욕청장영【欲請長纓】적장(敵將)을 포박해 올 사람을 말한다. 한(漢) 나라 종군(終軍)이 “남월왕(南越王)을 묶어서 궐하(闕下)에 바칠 테니 긴 밧줄 하나만 달라.”고 청한 고사가 있다. 《漢書 終軍傳》 용【用】비용 용【舂】절구질하다. 용가【龍家】금산(錦山) 예현역(禮賢驛)에 용가(龍家)란 할머니가 있었는데, 용가는 그의 아들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 노파를 나이 많다 하여 감히 이름 부르지 못하고 아들 이름으로 불렀다. 나이 백 살이 넘도록 튼튼하고 무병(無病)하였다. 용가방【龍哥榜】사람을 조롱하는 벽보(壁報). 조선조 연산군 때, 무뢰배들이 사람을 조롱하는 벽보를 종루(鐘樓)에 붙이고, 그를 용가(龍哥)방이라고 했었다. 용강【龍岡】용강(龍岡)은 지명. 명 태조(明太祖)가 언젠가 종산(鍾山)에 행차하였다가 용강에서 순화문(淳化門)까지 걸어 와서 시신(侍臣)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전답 근처를 지나보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마침 농부들이 더위를 무릅쓰고 밭 가는 것을 보고는 너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하였음. 《淵鑑類函 勸農》 용강상산고가람【龍江上山古伽藍】수종사(水鍾寺)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하는 곳 양수리(兩水里)라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그 양수리를 옛날에는 용나루[龍津]라 하였으므로 여기 용강이라 하였다. 용개고문【容蓋高門】한(漢) 나라 우공(于公)이 옥(獄)을 다스리는데, 음덕(陰德)을 많이 쌓고, 집을 지으면 대문을 높고 크게 만들면서, “내 자손중에 반드시 귀한 자가 날 것이니 사마(駟馬)와 높은 일산[蓋]이 출입할 만큼 문을 크게 한다.” 하더니, 뒤에 과연 우정국(于定國)이 나서 벼슬이 정위(廷尉)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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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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