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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건식토【龍巾拭吐】당 나라 이백(李白)이 장안 저자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갑자기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 침향정(沈香亭)에서 모란을 읊은 청평사(淸平詞) 3수를 지을 새, 취한 것을 깨우려고 현종이 친히 수건으로 입가에 토한 것을 훔치었다. 용검【龍劍】땅에 묻혀 하늘의 두우(斗牛) 간에 자기(紫氣)를 내뿜고 있다가 뇌환(雷煥)에 의해 발굴되었다는 용연검(龍淵劍)을 말한다. 《晉書 張華傳》 용검사우빈【龍劍射牛頻】용검(龍劍)은 용천검(龍泉劍)으로, 중국의 보검 이름이다. 진(晉) 나라 때 오(吳) 땅에 붉은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치는 것을 보고 장화(張華)가 그곳을 파서 이 용천검을 얻었다고 한다. 용검직충우【龍劍直衝牛】용천검(龍泉劍)은 중국의 보검 이름이다. 진(晉) 나라 때 오(吳) 땅에 자색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치는 것을 보고 장화(張華)가 보검을 얻었다고 한다. 용견음득설중시【聳肩吟得雪中詩】당(唐) 나라 맹호연(孟浩然)이 경사(京師)에 가던 도중에 눈을 만나 지은 시를 말한다. 이를 두고 송(宋) 나라 소식(蘇軾)이 “또 보지 못하는가, 눈 오는 날 당나귀 탄 맹호연의 그 모습을. 시 읊느라 찌푸린 눈썹 산처럼 옹그린 그의 어깨.[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라고 읊은 유명한 시구가 전한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참고로 맹호연의 ‘부경도중우설시(赴京途中遇雪詩)’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迢遞秦京道 蒼芒歲暮天 窮陰連晦朔 積雪滿山川 落雁迷沙渚 飢鳥噪野田 客愁空佇立 不見有人煙” 용경【容經】가의(賈誼)의 저서인 신서(新書)의 편명인데, 내용은 곧 지(志)ㆍ용(容)ㆍ시(視)ㆍ언(言)ㆍ좌(坐)ㆍ행(行)ㆍ궤(跪)ㆍ배(排) 등에 있어 동작 절도(動作節度) 등의 법칙에 관하여 서술한 것이다. 용고【龍膏】용의 기름. 습유기(拾遺記)에 “연 소왕(燕昭王) 3년에 해인(海人)이 용의 기름 몇 말[斗]을 진상하자, 왕이 등촉(燈燭)으로 사용하여 그 광명이 1백 리까지 비쳤으므로 국민들이 모두 서광(瑞光)으로 여겼다.” 하였다. 용광사두전【龍光射斗躔】용천검(龍泉劍)은 중국의 보검 이름이다. 진(晉) 나라 때 장화(張華)와 뇌환(雷煥)이 천문(天文)을 살피다가 땅 속에 묻힌 보검의 빛이 두우성을 쏘아 비추는 것을 알고 용천검을 파내었다. 용광죽【龍光竹】소식(蘇軾)이 일찍이 용광사(龍光寺)에 들러서 큰 대를 얻어 견여(肩輿)를 만들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역시 사찰(寺刹)을 의미한 말이다. 《蘇東坡集 卷四十四》 용괘【龍掛】용괘(龍掛)는 음력 5월~6월 경, 천둥치고 비 내리는 즈음에 혹 짙은 구름 속으로 마치 굼틀거리는 용처럼 보이는 현상을 이른다. 용구【龍龜】비석을 말한다. 우리나라 풍속에 비석 좌대(坐垈)는 거북 모양으로 새기고 관석(冠石)은 용 모양으로 조각한다. 용궁【龍宮】사찰의 별칭이다. 용왕이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하여 바다 속에 큰 전각을 만들었다는 불교의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海龍王經 請佛品說》 용궁【龍宮】예천군(醴泉郡)의 속현(屬縣)이다. 용귀진연구【龍歸晉淵舊】임금의 죽음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 나라 때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자루 보검(寶劍)을 풍성현(豐城縣)에서 발굴하여, 하나는 장화(張華)에게 주고 하나는 자기가 가졌었는데, 장화와 뇌환이 모두 죽은 뒤에는 두 자루 보검 또한 연평진(延平津)의 못으로 들어가 두 마리 용이 되어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三十六》 용귀탑리류진골【龍歸塔裏留眞骨】법주사(法住寺) 뜰에 고려 승 자정(慈淨)의 비와 탑이 있다. 자정은 고려 왕자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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