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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圓機】선가(禪家)의 설법에 관한 용어(用語). 원활(圓滑)한 기봉(機鋒)이란 말이다. 원기【元氣】원기(元氣)는 천지의 정기(精氣)로 만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원기【鴛機】원래는 수놓는 제구를 말한 것이나, 여기서는 비단 짜는 베틀의 뜻으로 전용한 듯하다. 원기【猿騎】원숭이가 말탄다는 말로 말타는 놀이의 한 가지이다. 업중기(鄴中記)에 “기아(伎兒)에게 옷을 입혀 원숭이의 모양을 만들고, 달리는 말을 타고서 옆구리에도 붙었다 말머리에도 붙었다 말꼬리에도 붙으면서 말은 여전히 달리게 하였다. 그러므로 원기라 했다.” 하였다. 원기【園綺】진(秦) 나라와 한(漢) 나라가 교체될 무렵, 상산(商山)에 은거해 살았던 네 명의 노인 즉 상산사호(商山四皓) 가운데 동원공(東園公)과 기리계(綺里季)를 가리킨다. 《史記 留侯世家》 원기활【圓機活】선가(禪家)의 용어(用語)인데, 기봉(機鋒)이 원활(圓活)한다는 뜻이다. 원길【元吉】역경(易經) 곤괘 육오효사(六五爻辭)에 “누른 치마를 입은 형상이니 크게 길하다.” 하였는데, 황은 중앙 토(土)의 빛으로 중도(中道)를 뜻하고 치마는 하체의 옷으로 겸손을 뜻한다. 원낭만【元浪慢】후위(後魏)의 원열(元悅)을 이르는 듯하다. 원노산【元魯山】당(唐) 나라 때의 고사(高士)로서 노산령(魯山令)을 지냈던 원덕수(元德秀)를 이름. 원덕수는 본디 지극한 효자로서 평소에 명리(名利)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산수(山水)를 사랑하고 거문고나 타며 스스로 즐기었으므로, 천하에서 그의 행실을 고상하게 여기어 원 노산이라 칭했다 한다. 《唐書 卷一百九十四》 원덕태후【元德太后】고려 강종(康宗)의 비 유씨(柳氏). 고종(高宗)의 어머니. 고종 26년에 훙(薨)했다. 원도【原道】당대의 문호(文豪) 한유(韓愈)가 유도(儒道)의 근본을 논구(論究)하고, 노불(老佛) 등 이단(異端)이 시세와 영합하고 인정에 어그러짐을 논술한 글. 원도주【元道州】당 나라 문장가 원결(元結)을 가리킨다. 그가 도주 자사(道州刺史)를 지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원락【宛洛】중국에서 산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원읍(宛邑)과 낙양(洛陽)을 말한다. 원란【鵷鸞】원란은 조정의 반열에 서 있는 백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추새와 난새는 의용(儀容)이 한아(閑雅)하다 하여 이에 비유하는 것이다. 원랑고와【袁郞高臥】한(漢) 나라 원안(袁安)이 눈[雪]이 온 날에 집안에 누워서 나오지 않았더니, 낙양령(洛陽令)이 순시하다가 다른 집에는 모두 문 앞에 눈을 쓸고 사람들이 나오는데, 원안의 집 문 앞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으므로 죽은 줄 알고 눈을 헤치고 들어가니, 원안이 말하기를,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는 때에 남을 간섭할 것이 없다.” 하니 낙양령이 그가 어진 사람인 줄 알고 조정에 천거하였다. 원량【元亮】벼슬을 버리고 전원에 살면서 시와 술로 낙을 삼았던 진(晉)나라 도잠(陶潛)을 말한 것으로, 원량(元亮)이 이름이라고도 하고, 자(字)라고도 함. 원량나무종출전【元亮那無種秫田】원량은 도잠(陶潛)의 자이다. 그가 일찍이 팽택령(彭澤令)이 되었을 때, 현(縣)의 공전(公田)에다 모두 차조[秫]만 심으라 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항상 차조술에 취하기만 한다면 족하겠다.” 하였는데, 처자(妻子)들이 메벼[秔] 심기를 굳이 청하자, 이에 1경(頃) 50묘(畝)에는 차조를 심고, 50묘에는 메벼를 심도록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九十四》 원량소【元亮笑】원량은 진(晉) 나라의 도연명이다. 그는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으로 갔었는데, 그 봉급이 쌀 닷말이었다. 그 닷말 쌀로 하여 매이는 것이 싫다고 하여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 돌아가 버렸다. 그러므로 나도 그 현령의 봉급에 맛들여서 돌아가지 아니하면 도연명에게 웃음을 당한다는 말이다. 원량오희황【元亮傲羲皇】도연명(陶淵明)이 여름에 북창(北窓)에 누어서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스스로 희황(戱皇) 이상의 태고적 사람이라 칭하였다. 원량증수배독우【元亮曾羞拜督郵】원량은 진(晉) 나라 때의 고사 도잠(陶潛)의 자. 도잠이 일찍이 팽택령(彭澤令)이 되었을 때. 군(郡)에서 독우(督郵)를 팽현에서 보내자, 현의 아전이 도잠에게 “응당 의관을 갖추고 독우를 뵈어야 한다.”고 하므로, 도잠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나는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 하고는, 즉시 인끈을 풀어 던지고 팽택현을 떠났던 것을 이른 말이다. 《晉書 卷九十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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