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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불인【爲富不仁】재산을 모으려면 남을 불쌍히 여기지 않게 된다. 부자가 되는 것과 어진 일을 함께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르는 말. 위부인【衛夫人】진(晉) 나라 위항(衛恒)의 종녀이며 이구(李矩)의 아내로 이 부인(李夫人)이라고도 하는데, 종요(鍾繇)의 필법을 전수받아 예서(隸書)와 정서(正書)를 잘 써, 왕희지(王羲之)ㆍ왕헌지(王獻之)가 모두 그에게서 글씨를 배웠으므로 글씨를 잘 쓰는 부인으로 칭하게 되었다. 위분류【渭分流】위수(渭水)와 경수(涇水)가 합쳐져서 황하로 들어가는데, 옛 사람들이 위수는 맑고 경수는 흐리다 하였다. 위비언고【位卑言高】지위가 낮으면서 드높이 정치에 대한 일을 거론하는 것은 죄이다.[位卑而言高 罪也] 《孟子 萬章 下》 위빈로수치공수【渭濱老叟嗤空手】늙은이란 곧 주(周) 나라 강 태공(姜太公)을 이름. 강 태공이 일찍이 위수 가에서 낚시질을 할 적에 삼주야(三晝夜) 동안 물고기가 한 마리도 물지 않으므로 분이 나서 의관을 벗어 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齊太公世家注》 위사【衛司】익위사(翊衛司)의 약칭. 위산휴재궤【爲山虧在簣】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끝을 마쳐야 한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旅獒에 “아홉 길[九仞]의 산을 만드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서 공이 무너진다.[爲山九仞 功虧一簣]" 하였다. 즉 한 삼태기만 모자라도 9인(仞)의 산이 완성되지 못한다는 뜻. 위상【魏相】위상은 제음(濟陰)정도(定陶)사람으로 자는 약옹(弱翁)인데, 한 나라 선제(宣帝) 때 승상이 되어 병길과 함께 마음을 합쳐 국정을 보좌하였다. 위상【魏尙】위상은 한(漢)나라 괴리(槐里) 사람으로 문제(文帝) 때 운중 태수(雲中太守)로 있으면서 개인 재산을 털어 군사들을 보살피고 흉노(匈奴)의 침입을 저지하는 등 정사를 잘하였으나, 조정에 전적을 보고하는 문서에 적군의 수급을 벤 숫자가 6명이 틀리다는 이유로 벼슬을 삭탈하고 1년간의 도형(徒刑)에 처해졌다가 풍당(馮唐)의 간청으로 풀려나 다시 운중 태수가 되었다. 《史記 卷一百二 馮唐傳》 위상양응【渭上揚鷹】주 나라 문왕(文王)이 사냥하러 나갔다가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呂尙)을 얻었는데, 뒷날 목야(牧野)에서 주(紂)와 싸울 때 여상이 매처럼 날쳤다. 《詩經 大雅 大明》 위서【魏書】중국 정사(正史)의 하나. 북위(北魏) 일대(一代)의 기록. 북제(北齊)의 위수(魏收)가 칙명을 받아 찬술하였으며, 554년에 완성되었다. 제기(帝紀) 12, 열전(列傳) 92, 지(志) 10, 전(傳) 130권이다. 그 자료로는 위대(魏代)의 기거주(起居注), 국사(國史) 외에 여러 가문의 보상(譜狀)과 구기구문(舊記舊聞)을 이용했으나, 완성된 후 기술이 부실불공평한 것에 대한 비난이 많아 예사(穢史)라 불리었다. 위수는 뇌물이나 개인 감정에 의해 곡필(曲筆)했다고 북사(北史) 및 기타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위서의 기술을 동시대의 다른 역사서와 대비, 검토하면 북제(北齊)의 황실 고씨(高氏) 및 그 일족에 대해 직필(直筆)을 피하고 있는 점 외에 곡필이라 단정내릴 것이 거의 없다. 위석【熨石】불에 구워 몸에 품고 자는 다리미처럼 생긴 돌. 위선최락【爲善最樂】착한 일을 하는 것은 인생에서 최고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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