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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유고공【有故公】유고공은 바로 노 정공(魯定公)을 이름. 노 소공(魯昭公)이 건후(乾侯)에 있다가 지난해에 객사(客死)하여 금년 6월에야 시신이 노나라에 들어왔으므로, 춘추(春秋) 경문(經文)에서 정월 즉위(正月卽位)를 쓰지 않았는데, 곡량전(穀梁傳)에서 정공에게 정월 즉위를 쓰지 않은 것은 곧 소공의 상차가 아직 밖에 있어 유고(有故)한 임금이기 때문이었다고 해석한 데서 온 말이다. 자세한 것은 곡량전(穀梁傳) 정공(定公) 원년(元年)에 보인다.

유고피맹【襦袴疲氓】한 나라 염범(廉範)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있을 때에 도시에, 집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었기 때문에 화재가 자주 나므로, 전의 태수는 영을 내려 밤에 불을 켜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여자들이 밤에 길쌈을 하지 못하여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 염범이 와서는 다만 방화(防火)할 물만 준비하게 하고 불켜는 것을 허락하였더니 백성들이 기뻐하여 노래를 부르기를, “전에는 홋옷도 없더니 지금은 바지가 다섯 개 씩이나 되네.” 하였다.

유곤【留髡】전국(戰國) 시대에 순우곤(淳于髡)이 제왕(齊王)에게 말하기를, “해가 저물고 술이 취했을 적에 남녀(男女)가 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당상(堂上)에는 촛불이 꺼지고 주인이 다른 손을 보내고 곤(髡)을 유숙하게 할 적에 여인의 비단 옷에 끈이 풀어지고 향내가 나면 그 때가 제일 즐겁습니다.” 하였다.

유곤【劉琨】좌사(左思)ㆍ곽박(郭璞)과 함께 동진(東晉)의 세 시걸(詩傑)로 일컬어지는데, 진이 남도(南渡)한 뒤 사직신(社稷臣)으로 자처하며 복수하기 위해 비통해하면서 피눈물로 시를 썼다고 함.

유곤암하시【庾袞巖下尸】유곤은 진(晉) 나라 때 사람으로 근검(勤儉)하고 학문에 독실했으며, 특히 효성과 우애가 뛰어나서 세인들이 그를 ‘유이행(庾異行)’이라고 호칭하기까지 했는데, 뒤에 진 나라가 위태해짐을 보고는 대두산(大頭山)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현기증이 나서 잘못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던 고사이다. 《晉書 卷八十八》

유곤자【劉琨紫】진(晉) 나라 유곤(劉琨)의 눈이 자색(紫色)이었다.

유곤촉진멸【留髡燭盡滅】전국시대 때 제(齊) 나라 순우곤(淳于髡)이 “촛불이 다 꺼진 상태에서 다른 손님은 모두 내보내고 나만 남겨두고서 마음대로 마시게 하면 술 한 섬을 먹을 수 있다.”고 한 고사로서 기루(妓樓)에 머물며 즐기는 것을 말함.

유공【庾公】유공은 진(晉) 나라 유량(庾亮)을 가리킨다. 그가 무창(武昌)을 다스릴 때 부하 관원들과 술자리를 함께하며 남루(南樓)에서 달구경을 했던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容止》

유공간【劉公幹】공간은 삼국 시대 위(魏) 나라의 문인 유정(劉楨)의 자(字)이다.

유공객【遊邛客】임공에 노는 손이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상여는 젊었을 때에 독서하기를 좋아하여 문장이 뛰어났는데, 뒤에 임공에 와 있자 왕길은 무척 존경하였다. 그리하여 임공의 부호였던 탁왕손(卓王孫)의 연회에 함께 초대되었는데, 이때 마침 탁왕손의 딸인 문군(文君)이 새로 과부가 되어 집에 있다가 상여에게 반하여 마침내 그를 따라 밤에 도망하였다. 《漢書 司馬相如傳》

유공루【庾公樓】유공루는 중국 강주(江州)에 있던 누각 이름인데, 진(晉) 나라의 유량(庾亮)이 강주ㆍ형주(荊州)ㆍ예주(豫州)의 자사가 되어 무창(武昌)을 다스릴 때 고을 관리 은호(殷浩)ㆍ왕호지(王胡之) 등과 남루(南樓)에 올라가 달구경을 하며 밤이 새도록 담소하였다 하여 나중에 호사자(好事者)들이 그곳에 누각을 세우고 유공루라 이름하였다 한다. 《晉書 卷七十三 庾亮傳》

유공은배【柳公銀杯】유공은 당(唐) 나라 유공권(柳公權). 그는 일찍이 술잔 한 상자를 보관하여 두었는데, 포장하여 표지를 붙인 상자는 그대로 있으나 술잔은 다 없어져버렸다. 그런데 종들의 말이 요망하여 종잡을 수가 없자, 공권은 웃으면서 “은술잔이 신선이 되어 가버렸는가 보다.” 하고, 다시는 힐문하지 않았다. 《唐書 柳公權傳》

유공진【庾公塵】유공(庾公)은 곧 진(晉) 나라 유량(庾亮)을 가리킨 말. 왕도(王導)는 유량의 권세가 너무 중한 것을 미워하여 항상 서쪽 바람이 불 때면 부채로 낯을 가리고 “원규(元規)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힌다.” 하였다. 《晉書 卷六十五 王導傳》

유공진【庾公塵】진(晋) 나라 왕도(王導)가 유량(庾亮)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유량은 무창(武昌)에 있었다. 서풍(西風)이 불 때마다 왕도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우며, “원규(元規)의 먼지가 사람을 더럽히네.” 하였다. 무창이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공흥【庾公興】유공은 진(晉)의 유량(庾亮)을 말함. 유량이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무창(武昌)에 있을 때 자기 부하 무리들이 가을 달밤에 남루(南樓)에 올라가 놀고 있었다. 유양이 거기를 오자 모두 일어나 피해가려고 하므로 유양이 나직이 말하기를 “그대들 조금 있게. 늙은 이 사람도 여기 오니 흥이 보통이 아닐세.” 하고 함께 어울려 담소하였다고 함. 《晉書 卷七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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