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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留中】신민(臣民)이 올린 소장(疏章)에 계자(啓字)를 찍지 않고 정원에 내리면 정원에서 본인에게 통보하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원래의 뜻인데, 통상 대내(大內)에 머물러 두고 내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유중영【柳中郢】당 나라 사람. 그는 검소하여 평생에 의복에 향(香)을 풍기지 아니하였다. 유즙의【柳汁衣】버드나무의 즙으로 옷을 물들인다는 뜻으로, 과거의 급제를 예시한 말이다. 당(唐) 나라 때 이고언(李固言)이 오래된 버드나무 밑을 지나자, 손가락 퉁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누군가 말하기를 “나는 버드나무 귀신 구렬군(九烈君)인데, 버드나무 즙으로 그대의 옷을 물들여 놓았으니, 과거 급제는 의심할 것이 없다.” 하였는데, 과연 그 후 얼마 안되어 그가 장원급제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유지【柳枝】백거이(白居易)의 기첩(妓妾) 이름. 유지【柳枝】유지는 당 나라 한유(韓愈)의 애기(愛妓) 이름이다. 유지가【柳枝歌】백거이가 노경에 풍만한 소만을 두고 양류지사(楊柳枝詞)를 지었다. 유지경성【有志竟成】굳건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낸다는 뜻의 고사성어. 유지반절【柳枝攀折】이별한다는 뜻이다. 옛날의 악곡(樂曲) 가운데 이별의 아쉬운 정을 노래한 절양류곡(折楊柳曲)이 있다. 유지사성【有志事成】목표를 두고 꾸준히 노력하면 마침내 뜻대로 이루어 냄. 뜻이 있으면 일이 이루어짐. 유지수방내탐선【柳枝雖放柰耽禪】유지는 백거이가 데리고 다니던 기생으로, 그의 시 한거(閒居)에, “금 굴레 검은 말도 근자에 팔고, 비단 옷소매 유지도 이윽고 돌려보냈네.” 하였다. 백거이는 만년에 형부상서로 치사(致仕)하고 향산(香山)에 은거하여, 자호(自號)를 향산거사(香山居士)라 하면서 승려 여만(如滿)과 함께 향화사(香火社)를 결성하여 불법(佛法)에 탐닉하였다. 《舊唐書 白居易傳》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뜻이 있는 자는 결국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음. 유직【遺直】옛사람의 풍도가 있는 곧은 사람. 유진【遊秦】당나라 시인(詩人)들이 유진(遊秦), 입진(入秦)이란 말을 간간이 쓰는데, 그것은 당나라 수도(首都)가 옛날의 진(秦)인 장안(長安)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元)나라의 수도는 북경이나, 당나라 시인의 문구를 그대로 써서 중국에 가는 것을 유진(遊秦)이라 하였다. 유진【庾塵】진(晉) 나라 때 왕도(王導)가 유량(庾亮)의 권세(權勢)를 미워하여, 서풍(西風)이 일어나서 먼지가 일면 스스로 부채를 들고 그 먼지를 가리면서 말하기를 “ 유량의 먼지가 사람을 더럽힌다.”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六十五 王導傳》 유진흥【遊秦興】전국 시대 변사(辯士) 소진(蘇秦)은 진 나라에 들어가 진왕(秦王)에게 글을 10차례나 올렸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검은 갖옷이 다 해진 채 크게 곤궁하여 돌아왔다. 《史記 蘇秦列傳》 유차【油車】기름칠로 벽(壁)을 단장한 유벽차(油壁車)를 말함. 유차【劉叉】유차는 당(唐) 나라 때의 절사(節士)로서, 일찍이 한유(韓愈)와 종유하였던바, 한번은 한유가 묘지명(墓誌銘)을 써주고 받은 금(金) 수근(數斤)을 채가면서[攫金] “이는 모두 묘중인(墓中人)에게 아첨하여 얻은 것이니, 내가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 200/10/20/30/40/50/60/70/80/90/300/10/20/30/40/50/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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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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