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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螭頭】궁궐 섬돌에 새긴 용 머리 모양의 장식물로, 한림 학사(翰林學士)를 가리킨다. 진택장어(震澤長語) 관제(官制)에 “아조(我朝)의 한림은 모두 사관(史官)으로, 반열이 이두(螭頭)에 가깝기는 하나 역시 전하(殿下)에 멀리 있다.” 하였다. 이두【螭頭】기거주(起居注)를 의미한다. 기거사인(起居舍人)이 섬돌 아래 이수(螭首) 옆에 좌우로 나뉘어 서서 사관(史官)의 직분을 행한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두관(螭頭官)《宋史 職官志 1》 이두【李杜】당(唐) 나라 시인(詩人)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이다. 이두광망【李杜光芒】한유의 시에 “李杜文章在 光焰萬丈長" 이라 하였음. 이두란【李豆蘭】여진족(女眞族) 무장(武將)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한 뒤 북청(北靑)에서 거주하였으며, 이성계(李成桂)와 의형제를 맺고 그의 등극(登極)을 도와 개국 일등공신에 오르고 퉁(佟)이라는 원래의 성(姓) 대신 이씨(李氏)를 하사받았다. 이지란(李之蘭)이라고도 한다. 이두석두【以杜釋杜】두보(杜甫)의 시로 두보의 시를 해석해야 한다. 이두암【螭頭暗】대궐 계단의 돌로 새긴 용의 머리[螭頭]. 한유(韓愈)의 원일조회(元日朝會)시에, “금로의 향이 움직이니 용의 머리가 어두워지네[金爐香動螭頭暗].”라는 구절이 있다. 이락【伊洛】이락은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강학하던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으로서 정주학(程朱學)의 연원(淵源)을 가리킨다. 이락【伊洛】정주학(程朱學)을 가리킨다. 이수(伊水)ㆍ낙수(洛水) 사이에서 두 정자(二程子), 즉 명도(明道)와 이천(伊川)이 강학(講學)을 하였는데, 뒤에 주자(朱子)가 정자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이란간성거가연【二卵干城詎可捐】자사(子思)가 위(衛) 나라에 있을 적에 구변(苟變)이란 사람을 위 나라 임금에게 천거하면서 그가 장수가 될 만한 재목이라고 하자, 위 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그가 장수의 재목이 되는 것은 알지만, 그가 일찍이 아전으로 있을 때 남의 계란 두 개를 먹은 일이 있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고 하므로, 자사가 이르기를 “성인이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목수가 나무를 쓰는 것과 같아서 장점만 취하고 단점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남의 계란 두 개를 먹었다 하여 간성(干城) 같은 장수를 버리는 것은 이웃 나라에 알릴 수 없는 일이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孔叢子 居衛》 이란격석【以卵擊石】계란으로 바위 치기. 즉,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당해 내려는 어리석음을 비유. 손해만 볼 뿐 이익이 없는 어리석은 일. 이란곡【離鸞曲】짝을 잃은 난새를 상징하여 만든 금곡(琴曲)의 이름. 이란별학【離鸞別鶴】거문고 곡명. 모두 이별을 노래한 곡임. 《樂府詩集 琴曲歌舞》 이란투석【以卵投石】달걀로 바위 치기. 즉 무모한 일을 말함. 이량【伊涼】이주(伊州)와 양주(涼州)의 두 악곡(樂曲). 악원(樂苑)에 “이주는 상(商)에 해당한 곡조요 양주는 궁(宮)에 해당한 곡조이다.” 하였다. 이려【易旅】사람이 적다. 또는 중지를 개혁하다. 이련【二連】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을 말하는데,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소련과 대련이 거상(居喪)을 잘하여 3일을 게으르게 하지 않고, 3개월을 해이하게 하지 않고, 1년을 슬퍼하고, 3년을 걱정하였는데, 이들은 동이(東夷)의 사람이다.” 하였다. 이령【李寧】고려 때의 유명한 화가(畫家)이다. 이령가【二嶺歌】함경도 단천(端川)의 마천령(摩天嶺)과 마운령(摩雲嶺)을 노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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