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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李資】이자(李資)는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주도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으로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에 봉해진 이귀(李貴)의 친형이다. 이자【李耔】이자는 중종(中宗) 때 사람으로, 우참찬을 지냈으며 기묘사화(己卯士禍)에 걸려서 파직된 뒤에 음성(陰城), 충주(忠州) 등지에 살면서 학문을 강마하였다. 이자【二子】적송자와 왕자교. 이자노노【二子呶呶】진(晉) 나라 완적(阮籍)이 지은 주덕송(酒德頌)에, “술먹는 사람이 취해서 모든 것을 파탈하고 누워 있으면 벼슬하는 선비[縉紳處士]와 귀골의 집 젊은 사람[貴介公子]들은 그 취한 사람을 시비하고 비방한다.” 하였으니, 두 사람이란 그 선비와 젊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자릉【李子陵】연릉부원군(延陵府院君) 이호민(李好閔)의 아들로 연천군(延川君)에 봉해진 이경엄(李景儼)을 가리킨다. 자릉은 그의 자(字)이다. 이자문【李子文】자문은 이상질(李尙質)의 자(字)이다. 인조(仁祖) 10년에, 인조가 사친(私親)을 추숭(追崇)하려 하는 것을 극간(極諫)하다가 종성(鍾城)에 유배되었다. 이자방【李子方】자방은 이경의(李景義)의 자(字)이다. 이자시【李子時】자시는 이민구(李敏求)의 자이며, 호는 동주(東州)이다. 이수광(李晬光)의 아들임. 이자어고죽【二子於孤竹】주 무왕(周武王)이 상(商) 나라를 치는 것을 간하다가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굶어 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가리킨다. 이자장【李子章】자장은 이현(李)의 자이다. 이자현【李資玄】고려 시대의 문인.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이다. 문과 급제하여 대악서 승(大樂署丞)을 지내다가 선종(宣宗) 때 벼슬을 버리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 주람하던 중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이르러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으로 고치고 선학(禪學)에 심취하였음. 고려 예종이 그를 누차 부르자, 그는 나가지 않고 표(表)를 올려 사양하기를 “새의 본성대로 새를 길러서 종고의 걱정이 없게 하시고, 물고기를 관찰하여 물고기를 알아서 강호를 좋아하는 물고기의 본성을 이루게 하소서.[以鳥養鳥 庶無鐘鼓之憂 觀魚知魚 俾遂江湖之性]" 하고 끝내 은거하여 여생을 마쳤던 데서 온 말이다. 《高麗史節要ㆍ高峯續集 卷二》 이잠근숙계【珥簪勤夙戒】이잠은 여자의 귀고리와 머리 장식. 주(周) 나라 선왕(宣王)이 후부인(后夫人)과 사랑에 빠져서 날이 늦어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강후(姜后)가 귀고리와 머리 장식을 풀고 죄를 청하면서 간했다고 한다. 이장【李丈】이인기(李麟奇)의 호가 송계거사(松溪居士)이다. 이장【弛張】이장은 활을 늦추고 당김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이 문무겸전(文武兼全)하고 융통성이 있음을 가리킨다. 예기(禮記) 雜記 에 “한번 당기고 한번 늦춤은 문무의 도이다.[一張一弛 文武之道也]" 하였음. 이장곤【李長坤】이장곤은 우찬성으로 있던 중에 심정(沈貞), 홍경주(洪景舟) 등에게 속아 기묘사화를 일으키는 데 가담하였으나, 그들의 목적이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들을 없애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들의 처형을 반대하였다가, 심정 등의 미움을 받아 관작을 삭탈당하였다. 이장군【李將軍】한(漢) 나라의 이광(李廣)을 가리킨다. 무제(武帝) 때 북평 태수(北平太守)로 부임하자 흉노가 두려워하여 비장군(飛將軍)이라고 일컬으면서 감히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史記 卷109》 이장길【李長吉】당(唐)의 종실(宗室)로서 이름은 하(賀), 장길(長吉)은 그의 자(字)임. 그는 어려서부터 시문에 능하였음. 저서에는 창곡집(昌谷集)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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