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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彝齋】권돈인(權敦仁)의 호. 이재【彝齋】송 나라 말기의 은사(隱士) 조맹견(趙孟堅)의 호. 이적【李勣】당(唐) 나라의 명장(名將). 처음 이름은 세적(世勣)인데. 태종의 휘(諱)를 피하여 이름을 달리 ‘적’으로 했다. 이적【李適】중국 초당(初唐) 때의 문인으로, 천태산의 도사 사마승정(司馬承禎)이 장안에 왔다가 돌아가게 되자 이적이 그의 고상한 풍도를 기리는 시를 지어 증정했는데, 당시 3백여 인에 달하는 조정의 선비들이 다투어 그 시에 화답하였으므로 그 시를 묶어 백설기(白雪記)라고 했다는 것이다. 《舊唐書 卷一百九十》 이적선원【李謫仙園】이태백(李太白)이 봄밤에 도리원(桃李園)에 놀면서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지었다. 이전【李佺】능창군 이전【伊瀍】이전(伊瀍)은 이수(伊水)와 전수(瀍水)인데, 낙양(洛陽) 부근에 있다. 이전삼모【二典三謨】서경(書經)의 편명인 요전(堯典)ㆍ순전(舜典)과 대우모(大禹謨)ㆍ고요모(皐陶謨)ㆍ익직(益稷)을 가리킨다. 이전투구【泥田鬪狗】굳은 의지와 투지. 몹시 끈질긴 성질과 행동을 비유.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 밭의 개싸움.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는 싸우면 싸울수록 서로의 몰골이 심하게 더러워진다. 즉,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악착같이 꼴사납게 싸우는 사람이나 그런 싸움. 이절동【李浙東】당(唐) 나라 때에 절동 도단련관찰사(浙東都團練觀察使)를 지낸 이손(李遜)을 말하는데, 한유(韓愈)가 장적(張籍)을 위하여 쓴 여이절동서(與李浙東書)가 있다. 《舊唐書 卷一百五十五》 이정【離亭】이궁 별관(離宮別館)에서 조금 떨어진 길거리에 세워진 일종의 휴게소로, 옛날에 왕왕 여기에서 송별을 하곤 하였다. 이정【離亭】이정은 길가의 역정(驛亭)이다. 성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의 길 옆에 세워 둔 정자로, 옛사람들이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전송하였다. 이정【李靖】이정은 병법(兵法)에 뛰어나 고조(高祖) 태종(太宗) 2대에 걸쳐 행군대총관(行軍大總管)으로서 누차 출정하여 위대한 공훈을 세웠다. 이정【李楨】이정은 서하국(西夏國)의 왕족(王族)으로 금(金) 나라 말엽 원(元) 나라에 인질되었고, 학문이 출중하여 원 태종(元太宗)의 사랑을 받았음. 이정【鯉庭】이정은 아버지가 아들을 훈계하는 장소를 가리키는데 공자(孔子)의 아들 이(鯉)가 뜰[庭]을 지나다가 아버지인 공자의 교훈을 받은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季氏》 이정【李楨】조선 선조(宣祖) 때의 화가(畫家). 증조부 때부터 화가의 가정으로 10세 때에 이미 그림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13세 때에 장안사(長安寺)가 개수되자 벽화(壁畫)를 그려 절찬을 받았다. 산수(山水)ㆍ인물(人物) 할 것 없이 다 잘했으며 글씨도 잘 썼으나 3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음. 《槿域書畵徵》 이정【而靖】민응회(閔應恢)의 자이다. 이정귀【李廷龜】자는 성징(聖徵)이고 호는 월사(月沙)인데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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