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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암【李廷馣】자가 중훈(仲薰)이고 정형(廷馨)의 형으로 임진왜란 때 아우 정형과 함께 선조(宣祖)를 호종하였다. 개성(開城)에 이르러 수비에 임했다가 뒤에 개성이 함락되자 황해도로 가 의병을 모집하고 초토사(招討使)에 임명되어 연안(延安)에서 왜군 3천여 명을 포위, 대첩을 거두었다. 뒤에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으로 월천부원군(月川府院君)에 봉해지고 연안 현충사(顯忠祠)에 모셔졌다. 《誌狀輯略》 이정암【以酊菴】조선과 일본이 주고받는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일본측 승려가 거주하는 사찰. 또는 그 승려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음. 이정적막【鯉庭寂寞】아버지가 돌아간 뒤라서 아버지의 교훈을 들을 길이 없음을 탄식한 말. 공자(孔子)가 일찍이 홀로 서 있을 때 아들 이(鯉)가 뜰을 지나자(過庭), 공자가 묻기를 “너는 시(詩)를 배웠느냐?" 하므로, 이가 “못 배웠습니다.”고 대답하니, 공자가 “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므로, 이가 물러 나와 《시》를 배웠다는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季氏》 이정전【李程甎】당(唐) 나라 때 한림청사(翰林廳舍) 앞 계단에 벽돌길이 있었는데, 겨울철이면 해그림자가 그 다섯 번째의 벽돌에 이르는 때가 학사(學士)들의 입직 시간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림 학사 이정(李程)은 성품이 게을러서 항상 해그림자가 여덟 번째의 벽돌에 이르렀을 때야 입직을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그래서 당시 이정을 팔전학사(八甎學士)라고 부르기도 했다. 《唐書 卷一百三十一》 이정치국기용병【以正治國奇用兵】정도(正道)로 치국하고 기변(奇變)으로 용병한다. 도덕경(道德經) 57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제【夷齊】이제는 백이(伯夷)ㆍ숙제(叔齊).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백이ㆍ숙제는 무왕에게 천자인 주(紂)를 치는 것은 불의(不義)라고 간하였고 뒤에 주 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자 수양산(首陽山)에 숨어 굶어 죽었다.” 하였다. 이제묘【夷齊廟】백이(伯夷)ㆍ숙제(叔齊)의 사당. 백이 숙제는 은(殷) 나라 말기의 의사(義士)로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다. 고죽국은 현재의 하북성(河北省)과 열하성(熱河省) 부근에 있었다. 이제영【李濟永】자는 내홍(內洪), 호는 동아(東阿). 영조 때 활동한 시인으로,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이조【梨棗】이조는 신선이 먹는 과일 즉 선약(仙藥)인 교리(交梨)와 화조(火棗)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신선이 도를 얻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조【吏曹】조선 시대 이조에서는 문관(文官)의 전형(銓衡)을 맡았음. 이조양조【以鳥養鳥】“바닷새[海鳥]의 앞에서 종과 북으로 음악을 아뢰니 새가 걱정하였다.”는 말이 장자(莊子)에 나온다. 그것은 새를 새로 대접해야지,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은 새에게는 합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조지광영【二鳥之光榮】한유(韓愈)의 글에 탄이조부(嘆二鳥賦)가 있는데, 길을 가다가 임금에게 바치려고 가져가는 새 두 마리를 보고서, “저것은 새로되 임금의 앞에 가는 광영을 누리는구나.” 하는 뜻으로 탄식하였다. 이조홍문록【吏曹弘文錄】이조 낭관(吏曹郎官)이 옥당(玉堂)을 선임(選任)할 때, 추천된 사람 가운데 제일 훌륭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후임자로 자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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