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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노【楊盧】양형과 노조린. 왕발(王勃)ㆍ낙빈왕(駱賓王)과 함께 초당 사걸(初唐四傑)로 불린 당 나라의 문장가들이다. 양능【良能】천연적으로 발로되는 지능을 말한다. 양능촉사【羊能觸邪】옛날 뿔이 하나인 해태[獬豸]라는 신양(神羊)은 형벌을 알맞게 다스리는 임금의 조정에 나와서 정직하지 못한 자를 뿔로 들이받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양담【羊曇】진(晉) 나라 사람으로, 사안(謝安)이 그를 애지중지하였는데, 사안이 죽자 양담이 그를 사모하여 평소 거하던 서주(西州)의 길은 경유하지도 않다가, 어느 날 만취하여 무의식중에 노래를 부르면서 서주 성문에 이르자 “살아서는 으리으리한 집에 살더니 죽어서는 산 언덕에 묻혔구나.”라는 조자건(曹子建)의 시를 읊고 통곡하며 떠났다 한다. 《晉書 卷79 謝安傳》 양담루【羊曇淚】옛날의 은혜를 생각하며 비감(悲感)에 젖어 흘리는 눈물이다. 진(晉) 나라 사안(謝安)의 생질인 양담(羊曇)이 사안이 죽은 뒤 술에 취해서 서주(西州)의 문을 지나다가 사안 생각에 ‘산구화옥(山丘華屋)’의 시를 읊고는 통곡하며 떠나간 고사가 있다. 《晉書 謝安傳》 양담불인과【羊曇不忍過】옛날의 극진했던 은혜를 생각하면 눈물이 솟구쳐 생전에 거처했던 곳을 차마 지나가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사안(謝安)의 생질인 양담(羊曇)이 사안의 총애를 많이 받다가 그가 죽자 서주(西州)의 길을 차마 지나가지 못했는데, 어느 날 대취(大醉)하여 부지불식간에 서주의 문에 이르자 “生存華屋處 零落歸山丘”라는 시를 읊고 통곡하며 떠나갔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晉書 卷79》 양담한【羊曇恨】진(晉) 나라 양담(羊曇)이 사안(謝安)의 사랑을 듬뿍 받다가 사안이 죽자 음악을 멀리하면서 서주(西州)로 가는 길은 통행을 하지 않았었는데, 언젠가 술에 만취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를 부르면서 서주의 문에까지 오게 되자, 비감(悲感)에 젖어 말채찍으로 문짝을 두드리면서 “生存華屋處 零落歸山丘”라는 조자건(曹子建)의 시를 읊고는 통곡하며 떠나갔다고 한다. 《晉書 卷79 羊曇傳》 양답【羊踏】늘 채식만 하고 육식하는 때가 적은 것을 비유하는 말. 해록쇄사(海錄碎事)에 “평소에 야채만 먹던 사람이 갑자가 양고기를 먹었더니, 꿈에 오장신(五臟神)이 나타나 말하기를 ‘양이 내 소채밭을 밟아 망쳐놓았다.’ 하였다.” 한다. 양답채【羊踏菜】염소가 채소밭을 밟아 망쳤다는 뜻으로, 평소 채식가가 어쩌다 육식을 한 것을 익살적으로 비유한 말이다. 양답채난번【羊踏菜難蕃】어떤 사람이 항상 채소만 먹다가 갑자기 양고기를 먹었더니, 꿈에 오장신(五藏神)이 말하기를, “양(羊)이 나의 채소밭을 짓밟아 망쳤다.” 하였다. 양대【陽臺】양대는 남녀가 성교하는 것을 말한다. 초 양왕(楚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놀다가 낮잠을 잤는데, 꿈에 한 부인이 와서 “저는 무산(巫山)의 여자로서 임금님이 여기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침석(枕席)을 같이해 주십시오.” 하므로, 임금은 하룻밤을 그와 함께 잤다. 그 이튿날 아침에 부인이 떠나면서 “저는 무산의 양지쪽 높은 언덕에 사는데 매일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비가 됩니다.” 하였다는 고사이다. 양대【陽臺】해가 잘 비치는 대. 양대녀【襄臺女】남녀(男女)가 서로 만나 즐기는 곳을 양대라 한다. 초 회왕(楚懷王)이 운몽(雲夢)에 가서 노는데, 한번은 꿈에 신녀(神女)가 나타나 자칭 무산신녀(巫山神女)라 하므로 그곳 산 밑에다 양대(襄臺)를 만들었다 한다. 양대몽【陽臺夢】무산(巫山) 신녀(神女)의 고사를 말한 것임. 송옥(宋玉)의 고당부서(高唐賦序)에, “첩은 무산의 남쪽, 고구(高丘)의 아래 있으며 아침에는 조운(朝雲)이 되고 저물녘에는 행우(行雨)가 됩니다.” 하였음. 양대불귀지운【陽臺不歸之雲】한 번 정교(情交)를 맺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여 말한다. 양대성일몽【陽臺成一夢】양대는 무산지몽(巫山之夢)과 같은 뜻으로, 즉 남녀의 정교(情交)를 이름. 초(楚)나라 양왕(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놀다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부인이 와서 “저는 무산(巫山)의 여자로서 고당의 나그네가 되었던 바, 임금님이 여기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침석(枕席)을 같이해 주십시오.” 하므로 임금은 하룻밤을 같이 잔 뒤, 이튿날 아침에 부인이 떠나면서 “저는 무산의 양지쪽 높은 언덕에 사는데, 매일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됩니다.” 하였다는 고사이다. 《宋玉 高唐賦》 양대우【陽臺雨】초 회왕이 고당(高唐)에서 놀다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어떤 여자가 와서 “저는 무산의 여자인데 침석(枕席)을 원합니다.” 하므로 동침을 하였는데 떠나면서 “저는 양대의 아래에서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됩니다.”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인용된 것이다. 《宋玉 高唐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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