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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烏帽】평민이 쓰는 허름한 모자를 말한다. 오묘【五廟】제후(諸侯) 나라의 사당. 천자(天子)의 나라는 칠묘(七廟). 오묘【五畝】오묘지택(五畝之宅)을 줄인 말로 농가(農家)의 한 단위(單位)를 뜻한다. 《孟子 梁惠王 上》 오묘경상【五畝耕桑】맹자(孟子) 양혜왕 상(梁惠王 上)에 “오묘의 집터에 뽕나무를 심는다.[五畝之宅 樹之以桑]" 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오묘지택【五畝之宅】맹자(孟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나오는 말로, 한 가족이 살 만한 땅과 집을 말한다. 오문【午門】오문은 연경 자금성(紫金城)의 정문이다. 오문금방【午門金榜】오문은 궁성의 문을 말하고, 금방은 대과(大科)의 합격자 명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그가 장원 급제한 것을 가리킨다. 오문련【吳門練】한시외전(韓詩外傳)에 “안회(顔回)가 공자를 시종하여 일관(日觀)에 올라 오문(吳門)의 말[馬]을 바라보고 한 필의 누인 베로 착각하였는데, 공자는 그것을 말이라고 했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오문은【吳門隱】세상이 자기와 맞지 않아 은거생활을 함. 한나라 때 왕망(王莽)이 정권을 제멋대로 하자, 자진(子眞)이 하루 아침에 처자도 가정도 버리고 구강(九江)으로 떠나 오시문졸(吳市門卒)이라고 변성명을 하고 지내다가 신선이 되었다고 함.《漢書 卷六十七》 오문졸【吳門卒】한(漢) 나라 구강(九江) 수춘(壽春) 사람으로, 자는 자진(子眞)이다. 남창위(南昌尉)를 지내다가 그만두고 고향에서 살던 중, 왕망(王莽)이 정권을 휘두르자 처자를 버리고 떠나 성명을 바꾸고 오시(吳市)의 문지기가 되었다 한다. 《漢書 卷六十七 梅福傳》 오미【五味】감(甘)ㆍ함(鹹)ㆍ신(辛)ㆍ산(酸)ㆍ고(苦)의 다섯 가지 맛. 오방【五坊】당(唐) 나라 때 선휘원(宣徽院)에 소속된, 매 등을 기르면서 사냥에 관한 일을 주관하던 다섯 군데의 직소(職所)로서, 즉 조방(雕坊)ㆍ요방(鷂坊)ㆍ골방(鶻坊)ㆍ응방(鷹坊)ㆍ구방(狗坊)이다. 《唐書 百官志》 오방【烏榜】호수(湖水)에서 노는 배를 말한다. 오배【鰲背】큰 자라의 등에 얹혀 있다는 동해(東海)의 신산(神山)을 말한다. 오배분운교【鰲背分雲嶠】섬들이 솟아 있는 것을 가리킨다. 옛날 발해(渤海) 동쪽의 다섯 산이 파도에 떠밀리자 상제가 다섯 마리의 자라로 하여금 이를 떠받치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列子 湯問》 오배신산【鰲背神山】발해의 동쪽에 산이 있어 물결을 따라 오락가락하므로 상제(上帝)는 서극(西極)으로 흘러갈까 두려워하여 거오(巨鰲) 열다섯 마리로 하여금 머리를 쳐들고 등에 이게 하였다고 함. 《列子 湯問》 오백세금【五百裞金】장사(葬事)를 후히 지냄을 뜻함. 세(裞)는 사자(死者)에게 입히는 옷과 이불을 이르는데, 한(漢) 나라 때 주건(朱建)의 모친이 죽었을 적에 열후(列侯) 등 귀인(貴人)들이 세전(裞錢)으로 부조한 것이 모두 오백 금(五百金)이나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四十三》 오병【五兵】궁(弓)ㆍ수(殳)ㆍ모(矛)ㆍ와(戈)ㆍ극(戟) 등 다섯 가지의 무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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