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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립【玉立】옥립(玉立)은 사위를 말한다. 진서(晉書) 위개전(衛玠傳)에 “개의 장인 악광(樂廣)이 명망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장인은 얼음처럼 맑고 사위는 옥처럼 윤이 난다.’했다.” 하였다. 옥립【玉立】옥립이란 대나무 줄기가 푸른 옥같이 생겼다고 하여 한 말이다. 옥립【玉立】옥이 서 있다는 말로, 사람의 풍채가 청수하고 아름다움을 뜻함. 옥마【玉麻】쏟아지는 빗줄기를 말한다. 당 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모옥위추풍소파시(茅屋爲秋風所破詩)’에, “빗줄기 삼대 같아 끊어지지 않는다.[雨脚如麻未斷絶]”하였다. 옥마【玉馬】현신(賢臣)을 말한다. 논어(論語) 비고참(比考讖)에 “은(殷) 나라가 달기(妲己)에 현혹되자 옥마가 도망쳤다.” 하였다. 옥무고가욕잠휘【玉無高價欲潛輝】알아주지 않아 도(道)를 행할 수 없으니 숨어야 한다는 뜻.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자공(子貢)이 ‘아름다운 옥이 여기에 있으니 갑 속에 넣어두어야 합니까, 좋은 값을 받고 팔아야 합니까?’ 하였더니 공자는 ‘팔아야 한다 팔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값을 기다리려 한다’ 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은 자공이 공자를 옥에 비하여 세상에 나와 도를 행하여야 함을 은근히 풍자한 말인데, 공자는 ‘값을 기다려야 한다’ 하여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야 함을 말한 것이다. 옥문관【玉門關】서역(西域)의 보화(寶貨)를 실어나르기 위해 한 무제 때 설치한 서역과의 경계에 있는 관문인데, 수졸(戍卒)들이 여기로 끌려가서 수자리 한다. 옥문도호증투필【玉門都護曾投筆】한(漢) 나라 반초(班超)가 처음에 집이 가난하여 관청에 글씨를 써주고 있다가 하루는, “대장부가 시의[塞外]에 나가서 공을 세울 것이지 어찌 붓과 벼루를 일삼으랴.” 하고 붓을 던지고 가더니 뒤에 옥문관(玉門關)을 나가서 서역(西域)을 평정하고 안서도호(安西都護)가 되고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옥미인【玉美人】화초의 일종. 옥반【玉盤】이백(李白)의 시에 “어렸을 적에 달을 몰라서 흰 옥소반이라 불렀네[少時不識月呼作白玉盤].”라고 한 구가 있다. 옥반가효【玉盤佳肴】옥 소반 위의 아름다운 안주. 화려한 그릇에 놓여 있는 맛있는 안주 옥배【玉杯】옥배는 동중서(董仲舒)의 저서인 춘추번로(春秋繁露)의 편명인데, 그 내용은 춘추의 대의(大義)를 서술한 것으로 특히 여기서는 노 문공(魯文公)이 상중(喪中)에 장가들었다는 것을 세밀히 비판하였다. 《春秋繁露 卷一》 옥배번로【玉杯繁露】모두 책 이름. 한(漠) 나라 동중서(董仲舒)가 지음.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 “仲舒所著 皆明經術之意 玉杯繁露淸明竹林之屬 復數十篇十餘萬言 皆傳於後世”라고 보임. 옥백【玉帛】옥과 포백(布帛)인데, 고대의 회맹(會盟)이나 조빙(朝聘) 때 제후(諸侯)들이 바치던 예물(禮物). 좌전(左傳) 애공(哀公) 7년 조(條)에 “우(禹) 임금이 도산(塗山)에 제후를 모았을 때 옥백(玉帛)을 가진 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하였다. 옥백제항【玉帛梯航】여러 외국이 옥백(玉帛)의 예물을 가지고 험한 산 길에서는 사닥다리를 타고 물에서는 배를 타고 왔다는 말이다. 옥벽루【屋壁漏】옥벽루는 옥루흔(屋漏痕)인데 필법을 이름. 옥변【玉弁】신선이 쓰는 모자를 말한다. 옥봉【玉峯】백광훈(白光勳)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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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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