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글닷컴ː명언명구/사전

하늘구경  

 

 

 

 

완전【宛闐】한 나라 때 서역(西域) 나라인 대완(大宛)과 우전(于闐)의 합칭.

완정【玩亭】왕사진(王士禛)의 호. 자는 이상(貽上), 별호는 어양산인(漁洋山人). 신성(新城) 사람이며 문집으로는 대경당전집(帶經堂全集) 등이 있다.

완정시【玩亭詩】완정은 왕사정(王士禎)의 호이다. 청(淸) 나라의 문장가였는데 시에 능하였다.

완조【頑操】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伯夷)의 풍도를 들으면 완부(頑夫)도 방정해지고 나부(懦夫)도 신조를 갖게끔 된다.”는 구절이 있다.

완평【完平】이원익(李元翼)의 봉호(封號) 이다.

완함【阮咸】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하나로 완적(阮籍)의 조카이다. 호방하여 세속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음률에 밝아 비파를 잘 탔다.

완항【阮巷】죽림칠현(竹林七賢)인 완적(阮籍)과 그의 조카 완함(阮咸)이 남쪽 마을에서 함께 살았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완항【鵷行】조정에 늘어선 관리의 항렬(行列)을 말한다. 완(鵷)은 봉황새의 일종인 원추새로 높은 새이기 때문에 조관(朝官)에 비유한 것이다.

완협【緩頰】비유 등을 해 가며 느릿느릿 말하는 것. 사기(史記) 위표전(魏豹傳)에, “緩頰▣說魏豹 能下之 吾以萬戶封若”이라고 보임.

완화【浣花】두보(杜甫)가 일찍이 성도(成都)의 완화리(浣花里)에 초당을 짓고 살았는데, 그 근처에는 금강(錦江)과 완화계(浣花溪)ㆍ완화교(浣花橋) 등의 경치 좋은 곳들이 있었다. 성도의 태수가 정월 10일에 출유(出遊)하였다가 4월 19일에 완화계에 이르러서야 그만두었다는 풍속이 전한다.

완화계【浣花溪】두보(杜甫)의 초당(草堂)이 있던 촉(蜀) 땅 성도(成都) 금강(錦江) 지류의 시냇가 이름이다.

완화계【浣花溪】사천(四川)에 있는 시내 이름.

완화당【浣花堂】완화당은 성도(成都) 완화계(浣花溪) 옆에 있던 두보의 초당(草堂)

완화락【浣花樂】만년에 은거하는 것을 뜻한다. 완화는 사천성(四川省) 성도현(成都縣)에 있는 완화계(浣花溪)의 약칭인데, 두보(杜甫)가 여기에서 살았었다.

완화소갈객【浣花消渴客】두보(杜甫)를 가리킨다. 완화초당(浣花草堂)은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교외의 지류(支流)인 완화계(浣花溪)에 있던 두보의 초당 이름이며, 두보 자신이 소갈증에 걸린 것으로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뛴다. 그의 시에 “난리 겪은 성도 참담한 기상, 완화초당 역시 어찌 남아 있으리.[成都亂後氣蕭索 浣花草堂亦何有]”라는 구절과 “나의 소갈증 비록 심하나, 우리 황제 수고로움 어찌 감히 잊으리.[我雖消渴甚 敢忘帝力勤]”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1 從事行 贈嚴二別駕, 卷14 別蔡十四著作》

완화일【浣花日】4월 19일. 이 날 환화계(浣花溪)에서 노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성도(成都)에서 완화일이라 이름.

완화자분【玩火自焚】무모한 일로 남을 해치려다 결국 자신이 해를 입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

완화초당【浣花草堂】성도(成都) 완화계(浣花溪) 부근에 있던 두보(杜甫)의 초당 이름이다.

완화촌【浣花村】사천성(四川省) 성도현(成都縣) 서쪽 완화계(浣花溪)에 있는 마을로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의 고택(故宅)이 있는데 골짜기가 깊고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

200/10/20/30/40/50/60/70/80/90/300/10/20/30/40/50/60/70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한비자 / 육도삼략 / 소서 / 손자병법 / 전국책 / 설원 / 한서 / 고사성어 / 옛글사전

소창유기 / 격언연벽 / 채근담(명) / 채근담(건) / 명심보감(추) / 명심보감(법) / 옛글채집

 

 

www.yetgle.com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