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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촌【雨村】이조원(李調元)의 호. 우치현【盱眙縣】지금 안휘성(安徽省) 봉양현(鳳陽縣) 동쪽에 있다. 초나라의 의제(義帝)가 도읍했던 곳이다. 우탁【牛鐸】진(晉) 나라 순욱(荀勗)이 길을 가다가 소방울 소리[牛鐸]를 듣고는 나중에 악기의 음률을 조정할 때 그 소방울 소리를 수소문해 찾아서 맞추었던 고사가 있다. 《晉書 荀勗傳》 우통【郵筒】우역(郵驛)을 통해 문서를 전달하는 죽통(竹筒)을 말한다. 우투성【牛鬪聲】진(晉) 나라 은중감(殷仲堪)의 아버지가 귀가 이상하게 잘 들리는 병을 앓았는데, 침상 아래에서 개미가 기어다니자 소가 싸운다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殷仲堪傳》 우판【虞坂】우판은 지명(地名)으로 어떤 준마(駿馬)가 소금 수레를 끌고 우판에 오르다가 자신을 알아줄 백락(伯樂)을 만나자 슬피 울었다는 고사이다. 우하【虞夏】순(舜) 임금과 탕왕(湯王)이 다스리던 왕도정치 시대를 말한다. 우한【羽翰】서신이나 문장을 뜻한다. 우혈【禹穴】우(禹) 임금이 서책을 보관해 두었다는 곳으로, 회계산(會稽山)에 있다고 한다. 우혜【禹蹊】하(夏) 나라 우(禹) 임금이 처음으로 행정 구역을 구주(九州)로 나누어 다스리고 공물(貢物)을 책정하였다. 《書經 禹貢》 우호【憂瓠】혜시(惠施)가 장자의 주장이 멋없이 크기만 하고 쓸모 없음을, 펑퍼짐하니 크기만 하고 아무 소용에도 닿지 않는 박에 비유하자, 장자는 혜시가 마음이 막혀 큰 것을 쓸 줄 모름을 지적하고 큰 박을 줄로 엮어 물에 띄워 타고 놀 수 있음을 일러 주었다. 《莊子 逍遙遊》 우화【雨花】불조(佛祖)가 설법(說法)할 적에 제천(諸天)에서 뭇 꽃들을 내려 공중에 가득히 내려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우화단【雨花壇】승려가 불경(佛經)을 강설하는 곳을 이름. 양 무제(梁武帝) 때에 한 법사(法師)가 어느 대(臺)에서 불경을 강설하는데, 강설이 하늘을 감동시켜 꽃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으므로 그 대를 우화대(雨花臺)라고 명명했던 데서 온 말이다. 우화등선【羽化登仙】날개돋친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 우화서피【虞龢舒被】우화는 진(陳)나라 여요(餘姚)사람인데,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비에 지붕이 새자 이불을 펴 책을 덮어 책이 젖지 않게 하였다 한다. 《南史 卷七十二 虞龢傳》 우환필연역【憂患必衍易】우환 속에 반드시 주역이 생김. 사람이 근심 걱정이 없으면 그 자체로 만족하여 달리 무엇을 하려고 하거나 또 그럴 이유도 없지만, 근심 걱정이 있으면 그것을 타개하고 예방할 방도를 탐구하기 마련이다. 신농(神農)과 황제(黃帝)가 역효(易爻)와 괘상(卦象)을 만든 뒤에 문왕(文王)이 주역을 또 만든 것은 문왕(文王)이 상주(商紂)에 의해 유리(羑里)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 후세에 법을 남겨 근심 걱정을 예방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한다. 곧 주역은 근심 걱정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주역(周易) 계사하(繫辭下)에 “역(易)이 생긴 것은 중고시대일 것이다. 역을 지은이는 반드시 근심 걱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였다. 우회【禹會】하우(夏禹)가 제후를 회합하였던 유적으로, 오늘날 안휘(安徽) 회원현(懷遠縣) 동남쪽에 있다. 우회촌【禹會村】중국 안휘성 회현(安徽省懷縣)에 있는 마을인데 하우씨(夏禹氏)의 유적이 있다 함.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에 “우 임금이 제후를 도산(塗山)에 모이게 하니, 옥백(玉帛)을 잡은 자가 만국(萬國)이었다.”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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