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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遠志】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환온(桓溫)이 원지 소초(遠志小草)라는 약초의 뜻을 묻자, 학륭(郝隆)이 “산속에 있을 때는 원지라고 부르고 세상 속으로 나왔을 때는 소초라고 부른다.”고 대답하여, 사안(謝安)을 부끄럽게 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排調》 원진【元稹】당 나라 시인.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시를 잘 지었으므로 궁중(宮中)에서 원재자(元才子)라 했고, 백거이(白居易)와 같이 이름이 높아 원백(元白)이라 일컬어졌으며, 또 그들의 시체를 원백체(元白體)라 함. 저서에는 원씨장경집(元氏長慶集)이 있음. 원진【元鎭】원진은 송 나라 때의 충신 조정(趙鼎)의 자(字). 과거의 책문(策文)에서 장돈(章惇)의 실정(失政)을 비판했고, 송 나라가 남천(南遷)한 뒤로는 나라의 부흥을 위해 진력하다가 간신 진회(秦檜)와 뜻이 맞지 않아 귀양가서 음식을 먹지 않고 자결하였다. 진회를 비롯한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여러 차례 좌천되었다가 사직하는 표문(表文)에서 “흰 머리 늙은 몸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서글픕니다. 단심(丹心)은 아직도 남았으니, 아홉 번 죽더라도 변치 않으리라 맹서합니다.” 하였다.《宋元學案 卷四十四》 원진단심【元鎭丹心】원진은 송 나라 때의 충신 조정(趙鼎)의 자(字). 과거의 책문(策文)에서 장돈(章惇)의 실정(失政)을 비판했고, 송 나라가 남천(南遷)한 뒤로는 나라의 부흥을 위해 진력하다가 간신 진회(秦檜)와 뜻이 맞지 않아 귀양가서 음식을 먹지 않고 자결하였다. 진회를 비롯한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여러 차례 좌천되었다가 사직하는 표문(表文)에서 “흰 머리 늙은 몸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서글픕니다. 단심(丹心)은 아직도 남았으니, 아홉 번 죽더라도 변치 않으리라 맹서합니다.” 하였다. 《宋元學案 卷四十四》 원진사【蚖珍詞】원진은 계절과 달에 따라 구분되는 여덟 종류의 누에치기 명칭 가운데 하나로, 3월에 치는 것을 말한다. 진(珍)자는 본디 두 잠을 잔 누에라는 뜻인데 원(蚖)자에 붙어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원차산【元次山】차산은 당(唐) 나라 원결(元結)의 자(字). 처음에 호를 의간자(猗玕子)로 하였다가 낭사(浪士), 또는 만랑(漫郞)으로 고쳤다. 당 대종(唐代宗) 때에 그의 어버이가 늙은 까닭으로 벼슬을 버리고 번상(樊上)으로 돌아가 책을 벗삼고 살았다. 《唐書 卷一百四十三 元結傳》 원차일장조【願借一長條】출세하도록 도와달라는 뜻이다. 당(唐) 나라 때 이의부(李義府)가 태종(太宗)에게 부름을 받고 들어가 까마귀[烏]를 읊은 시에 “햇볕 속엔 아침 빛을 날리고, 거문고에선 야제곡을 들었소. 상림엔 나무가 저리도 많은데, 한 가지 빌려주지 않으실는지.” 하였다. 원찰【願刹】자기의 소원을 성취하려고 복을 비는 정성으로 절을 세우는 것이다. 원천우인【怨天尤人】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함. 원충갑【元衷甲】충렬왕(忠烈王) 때 진사로 원주 별초(別抄). 합단적(哈丹賊)의 침공을 막아 큰 공을 세웠다. 《輿地勝覽》 원취【鴛翠】원취는 눈썹 모양의 하나인데, 당 현종(唐玄宗)이 화공을 시켜 미인들의 눈썹을 열 가지로 그렸다 한다. 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멀리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 원침【圓枕】둥근 나무로 만든 베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말. 문견전록(聞見前錄)에, “富公未第時 讀書於水南天宮寺三學院 夜枕圓枕 庶睡不能久 欲有所思 其勤苦如此”라고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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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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