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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장【銀章】한(漢) 나라 때 2천 석(石) 이상의 관원이 찼던 은인(銀印)으로 보통 군수(郡守)를 가리킨다. 은정【殷鼎】구정(九鼎)이라고도 한다. 맨 처음 하(夏) 나라 우(禹)가 아홉 개의 솥을 만들어 구주(九州)의 정벌을 상징적으로 표시하였던 것인데, 그 후로 국가의 정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곤 하였다. 은정조갱【殷鼎調羹】정승에 비유하여 쓴 말이다. 서경(書經) 열명(說命)에 “만약 국을 양념하게 될 경우에는 네가 염매의 구실을 하라.[若作和羹 爾惟鹽梅]" 하였는데, 이는 은 고종(殷高宗)이 부열(傅說)에게 재상의 일을 위촉한 것이다. 은정화염【殷鼎和塩】은(殷) 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내가 국을 끓일 때에 너를 소금이나 매실로 쓰리라.” 하였음. 《書經 說命》 은졸【隱卒】원래는 죽음을 애도한다는 말이었으나 시호(諡號)라는 뜻으로 어의(語義)가 전성되어 사용된다. 은종몽【殷宗夢】은종(殷宗)은 은(殷)의 고종(高宗) 무정(武丁)을 말한다. 그는 즉위하여 3년 동안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훌륭한 신하를 구하였는데, 꿈에 나타나므로 초상화를 그려 천하에 구하였다. 이때 부열(傅說)은 천한 신분으로 담 쌓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초상화와 같았으므로 마침내 발탁되어 훌륭한 정치를 이룩하였다. 《書經 說命》 은죽【銀竹】은죽은 굵은 빗줄기를 표현하는 시어인데,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에 “겨울 산을 비춰 주며 내려오는 하얀 비, 흩뿌리는 그 모습 은빛 대와 흡사하네.[白雨映寒山 森森似銀竹]”라는 구절이 있다. 《李太白詩集 卷21 宿鰕湖》 은지【銀地】불당을 세운 곳으로 불당을 말함. 은지작탐천【隱之酌貪泉】진(晉) 나라 오은지(吳隱之)가 부패 풍조가 만연된 광주 자사(廣州刺史)로 가서, 마실수록 탐욕을 일으키게 된다는 탐천(貪泉)의 샘물을 떠 마시고는, 시를 짓기를 “백이 숙제에게 마시게 하면 끝내 마음이 뒤바뀌지 않으리라.[試使夷齊飮 終當不易心]”라 하고 자신의 청렴한 절조를 계속 유지했다는 고사이다.《晉書 良吏 吳隱之傳》 은청【銀靑】은청은 은인 청수(銀印靑綬)의 준말로 은인장과 푸른 인끈을 뜻한다. 은탕한【殷湯旱】은탕은 은(殷)의 성탕(成湯)으로 7년의 혹심한 가뭄이 있었다. 은택표【恩澤表】은택표(恩澤表)는 한서(漢書)에 나오는 ‘외척은택후표(外戚恩澤侯表)’의 준말로, 국구(國舅)나 부마(駙馬) 등을 가리키는 말로 보통 쓰인다. 은토【銀免】즉 은토부(銀兎符)로서 벼슬아치가 휴대하는 부신이다. 조야첨재(朝野僉載)에 “한(漢) 나라에서 군사를 징발할 때 동호부(銅虎符)를 사용했는데, 당(唐) 나라에 와서 은토부가 되었다.” 하였다. 은풍준시【殷豐蹲柹】은풍은 경상도 풍기군(豐基郡)의 속현(屬縣)이고, 준시는 그곳에서 생산되는 감으로 껍질을 벗겨 꼬챙이에 꿰지 않은 채 말린 것이다. 은필【銀筆】은필은 곧 은으로 장식한 붓. 양 원제(梁元帝)가 일찍이 덕행이 있는 의사(義士)를 기록할 때에 은필(銀筆)을 사용하였던 고사이다. 《琅琊代醉編 卷二十四》 은한성망환【銀漢星芒煥】한(漢) 장건(張騫)의 떼[槎]가 성상(星象)으로 나타났다는 고사. 은해【銀海】옛날 제왕의 능묘(陵墓)에 설치한 인공 호수로, 곧 능침(陵寢)을 뜻한다. 은해【銀海】은해는 도가(道家)의 말로 사람의 눈[目]을 말함. 소식의 시에, “光搖銀海眩生花”란 구절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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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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