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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려【倚廬】나무에 의지하여 여막(廬幕)을 짓는다는 데서, 즉 상중(喪中)에 거처하는 여막을 말한다. 의려【倚閭】부모가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여 동구밖까지 나가서 기다리는 것을 이른다. 전국책(戰國策) 제책 하(齊策下)에, “왕손가(王孫賈)가 나이 15세 때 민왕(閔王)을 섬겼는데, 왕이 달아나서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그의 부모가 말하기를, ‘네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면 나는 대문에 기대어서[倚門] 바라보았고, 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마을문에 기대어서[倚閭]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지금 왕을 섬기다가 왕이 달아나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찌하여 돌아왔는가.’ 하였다.” 하였다. 의려사【倚閭思】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말한다. 전국 시대 왕손가(王孫賈)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네가 아침에 나가 늦게 돌아오면 나는 문에 의지하여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저물게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동구 밖에 의지하여 기다린다.”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戰國策 齊策》 의려선생【醫閭先生】하흠(賀欽)을 가리킨다. 의려자모【倚閭慈母】제(齊) 나라 왕손가(王孫賈)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네가 아침에 나가서 늦게 돌아오면 내가 문에 기대어 바라보고, 네가 나가서 안 돌아오면 나는 마을 문에 기대어 바라본다.” 하였다. 의려지망【依閭之望】부모가 밖에 나간 자식을 위해 마을 문에 기대어 기다림. 자녀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 의로인거【義路仁居】맹자(孟子) 이루(離婁) 상에, “인(仁)은 사람의 안택(安宅)이요, 의(義)는 사람의 정로(正路)이니라.” 하였음. 의료【宜僚】성은 웅(熊). 춘추 시대 초(楚)의 용사(勇士)로 구슬을 잘 다루어, 여덟 개는 늘 공중에 떠 있고 한 개만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느 때 초와 송(宋)이 싸우게 되었는데, 그가 가슴을 헤치고 칼을 맞고도 군전(軍前)에 서서 구슬을 놀리므로 송의 군사가 싸움을 잊고 구경하다가 패하게 되었다. 의루【倚樓】누각의 난간에 기대다. 기다림의 뜻으로 많이 쓰는 표현. 의루【倚樓】조하(趙嘏)가 지은 장안추석(長安秋夕)이라는 칠언율시의 제4구에 나오는 말인데, 두목(杜牧)이 바로 그 귀절을 무척이나 좋아하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조하를 조의루라고 칭하기까지 하였음. 참고로 그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雲物凄涼拂曙流 漢家宮闕動高秋 殘星數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 紫艶半開籬菊淨 紅衣落盡渚蓮愁 鱸魚正美不歸去 空戴南冠學楚囚” 의루명【倚樓名】뛰어난 시인의 명성을 말한다. 당(唐) 나라 시인 조하(趙嘏)의 시 ‘조추(早秋)’에 “몇 점 남은 별빛 속에 기러기는 변방을 질러가고, 한가락 피리 소리 속에 사람은 누대에 기대 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두목(杜牧)이 이 표현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그를 조의루(趙倚樓)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唐摭言 知己》 의루인【倚樓人】당(唐) 나라 조하(趙嘏)의 시에 “몇 점 희미한 별 떠 있는 변방 하늘에 기러기 날아가고, 어디선가 들리는 구슬픈 피리 소리에 한 사람 누각에 기대어 섰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이 있는데, 두목(杜牧)이 이에 탄복한 나머지 조하를 조의루(趙倚樓)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조씨(趙氏) 성을 가진 사람을 의루인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全唐詩話, 摭言》 의릉【懿陵】경종(景宗)의 능(陵)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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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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