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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국【李輔國】본명은 정충(靜忠). 당 현종(唐玄宗) 때에 궁중 마구(馬廐) 간수가 되었다가 양국충(楊國忠)을 죽이는 모의에 가담, 출세의 발판을 굳혔다. 그 뒤 원수부 행군사마(元帥府行軍司馬)로 발탁, 임금의 수족이 되었다. 대종(代宗)이 즉위하자 그를 높혀 상보(尙父)라 칭하고, 사공(司空)에 올려 박릉군왕(博陵郡王)에 봉했음. 그의 사람됨이 겉으로는 근후(謹厚)한 듯하면서 속은 매우 사나왔다. 권력을 잡자 더욱 못되게 굴므로 제(帝)가 자객을 보내어 죽였음. 이복【离腹】역경(易經)의 팔괘(八卦) 중에 삼리화(三离火)의 이(离)는 이허중(离虛中)이라고 하는데, 속이 비었다는 뜻이고, 설괘전(說卦傳)에는 “이(离)가 배[腹]가 된다.” 하였다. 이봉원【李逢原】봉원은 퇴계의 손자 이안도(李安道)의 자이다. 이봉향주천【移封向酒泉】이봉(移封)은 봉토(封土)를 바꿔 옮기는 것이다. 당(唐) 나라의 여양왕(汝陽王) 이진(李璡)이 술고래로 유명해 양왕 겸 국부상서(釀王兼麯部尙書)라는 별호를 얻기까지 하였는데, 그를 두고 지은 두보(杜甫)의 시에 “汝陽三斗始朝天 道逢麯車口流涎 恨不移封向酒泉”이라는 똑같은 표현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2 飮中八仙歌》 이부【吏部】당 나라 한유(韓愈)를 말함. 그는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냈다. 이부【吏部】이부는 진(晋)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풍류가 뛰어났고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오래 지냈던 산도(山濤)를 가리킨다. 또는 진(晋) 나라 때 주호(酒豪)로 이름이 높았고 일찍이 이부랑(吏部郞)으로 있으면서 밤에 남의 술을 훔쳐 먹다가 술 관장하는 사람에게 붙들려 결박당한 일도 있었던 필탁(畢卓)을 일러 필 이부(畢吏部)라고도 한다. 이부【貳負】옛날 사람 이름. 제(帝)가 그를 소속(疏屬)의 산에다 묶어두면서 바른쪽 발에다는 차꼬를 채우고 두 손은 뒤로하여 머리와 함께 나무에 매달아두었다고 함. 《山海經 海內西經》 이부시【吏部詩】이부는 당(唐) 나라 한유(韓愈)가 이부시랑(吏部侍郞)이 되었기 때문에 한유를 지칭한 것으로, 여기서는 한유와 같은 대문장가의 훌륭한 시와 같다는 말이다. 이부인【李夫人】이 부인은 한 무제(漢武帝)의 후궁으로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었는데, 그가 한 무제의 총애를 독차지하다가 일찍 죽자 무제는 그를 애처로이 여겨 그의 형모(形貌)를 감천궁(甘泉宮)에 그려 놓고 늘 그를 생각하였으며, 한 번은 방사(方士) 이소군(李少君)에게 부탁하여 이 부인의 신(神)을 맞아오게 하여 그 신을 바라보고서 비감(悲感)을 짓기도 하였다. 《漢書 卷九十七 外戚傳》 오얏꽃을 의인화하기도 한다. 이부청회【吏部淸懷】이부는 당(唐) 나라 때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가리키는데, 한유는 평소에 이단자(異端者)들을 항상 유자(儒者)로 돌리려는 욕망을 가졌기 때문에 한 말이다. 이부풍【吏部風】한유(韓愈)처럼 훌륭하다는 뜻. 한유는 일찍이 이부 시랑(吏部侍郞)이 되었었는데, 그의 문장이 굉심아건(宏深雅健)하여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며, 고문(古文)을 부흥시켜 후세의 사표가 되었다. 이분명월【二分明月】" 二分明月楊州白" 이라는 고시를 인용한 것인데 이는 양주의 달이 매우 밝아 천하의 이분을 차지했다는 뜻임. 이불유인【而不由人】논어(論語) 안연(顔淵)에, “하루에 극기복례(克己復禮) 하면 천하가 인(仁)에 돌아온다. 인을 함은 자기를 말미암지 남을 말미암을 것인가?[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 爲人由己而由人乎哉]”하였다. 이불해해지【以不解解之】글의 뜻을 푸는 데 풀리지 않는 것을 억지로 풀어낸다. 즉,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해석하면 곡해하기 쉽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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